1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의 세계적인 제약사인 사노피는 이날 코로나19 백신을 전 세계에 공평하게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전날 백신 개발에 자금을 댄 미국에 우선 공급하겠다는 폴 허드슨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을 하루만에 철회한 것이다.
허드슨 CEO는 지난 13일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위험을 감수하는 일에 투자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양의 백신을 선주문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먼서 미국이 백신을 가장 먼저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노피는 지난달 경쟁업체인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함께 코로나19 백신의 공동개발에 착수했다. 미국 정부 산하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이 이 프로젝트에 3000만달러(약 368억원)를 투자했다.
그러자 프랑스를 비롯한 EU는 거세게 반발했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은 세계를 위한 공공재여야 한다”며 “백신에 대한 평등한 접근권은 타협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 사실을 전해듣고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노피는 프랑스와 EU로부터 연구개발(R&D) 명목으로 각종 직·간접적 지원을 받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다음주께 사노피 경영진과 만날 계획이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도 이날 긴급 논평을 통해 “코로나19 백신은 국제적인 공공의 이익이 돼야 하며 접근 기회는 공평하고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허드슨 CEO는 유감을 표시하고, 백신 개발이 끝나면 모든 나라에 공평하게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개발을 놓고 미국과 EU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초 독일 바이오기업인 큐어백의 대니얼 메니첼라 CEO와 만나 백신 연구 결과물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요구했다. 그 대가로 막대한 자금 지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독일 일간 디벨트는 “개발된 백신을 미국인에게 우선적으로 사용할 권리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독일 정부는 강력 반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당시 긴급 회의를 열고 “큐어백이 독일에서 백신을 계속 개발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할 것”이라며 “적대적 인수가 시도되면 독일 정부는 즉각 개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본격화된 자국 이기주의가 백신 개발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선점하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이 불거지는 가운데 EU도 가세했다는 것이 FT의 설명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개발 중인 백신이 접종허가를 받을 때까지 12∼18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WT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임상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백신은 총 8개다. 이 중 4개가 중국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받고 있다. FT는 “중국 정부는 백신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개발하는 것이 중국의 위상을 떨치고 미국에 대해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반격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중국과 연계된 해커들이 코로나19 백신 등에 대한 연구 정보를 훔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해커들이 미국 내 코로나19 연구기관을 표적으로 한 활동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 FBI의 설명이다. FBI는 이 음모엔 해커들뿐 아니라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 학생·연구자들이 가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U 관련 전문매체인 유랙티브닷컴은 “미국과 중국의 코로나19 백신 경쟁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우주전쟁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미국은 지난 4일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해 40여개국이 74억유로의 자금지원을 약속한 온라인 국제회의에 불참하기도 했다. 한국 등 전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자금지원을 약속했지만 미국에선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러시아,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도 회의에 불참했다. 중국은 정부 수장이 아닌 EU 대사가 참석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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