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렌터카산업이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업계 수위를 다투는 허츠(Hertz)는 버거운 빚 부담 탓에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해야 할 판입니다. 2014년부터 거금을 투자해 허츠 지분 39%를 보유한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도 이번엔 제대로 쓴 맛을 볼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 렌터카 시장의 분위기는 미국과 사뭇 달라 보입니다. 국내 ‘톱2’ 가운데 하나인 SK렌터카는 지난 1분기에 적자는커녕 시장 예상을 웃도는 19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습니다. 롯데렌터카는 지난달 한진렌터카를 인수하며 현금 창고의 여유를 과시했습니다.
이런 차이는 서로 다른 사업 구조와 경쟁 환경에 기인합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허츠의 경우 그동안 매출의 무려 3분의 2를 공항에서 올려왔습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여객 수요가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결국 항공사들과 마찬가지로 허츠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미 렌터카업체들은 모바일 차량호출 서비스 ‘우버’ 같은 신예와의 힘든 싸움으로 이미 크게 지쳐있었는데요. 이들의 ‘신음’을 들은 신용평가사들도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무디스는 지난달 말 허츠와 경쟁업체 에이비스(Avis)의 자산유동화증권(ABS) 신용등급을 떨어뜨렸습니다. 이 영향을 받은 ABS 규모는 무려 106억달러(13조원)에 달합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의 대형 렌터카업체들은 매출의 대부분을 장기 렌터카 사업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가계가 매달 일정액을 내고 자가용처럼 차를 이용하는 서비스입니다. 롯데렌터카는 작년 별도 재무제표 기준 차량렌탈 영업 수익의 약 90%를 장기렌탈 부문에서 냈습니다. 게다가 성장세도 눈부십니다. 전국자동차대여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렌터카 인가 대수는 2014년부터 매년 14.6~23.7%의 급증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고속 성장의 배경은 가계의 장기 렌터카 이용 증대입니다. 롯데렌탈은 과거 법인 중심이었던 수요가 가계로 확산하는 배경으로 “소유보다는 이용에 중점을 두는 소비자들의 가치관 변화, 액화석유가스(LPG) 연료 사용이 가능한 렌터카의 특성, 애프터스비스(AS) 및 관리 유지 서비스의 제공 등”을 꼽고 있습니다.
장기 렌터카 사업은 대당 매출도 안정적인데요. 롯데렌탈은 “월별 비수기, 성수기 구분 없이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성을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여행 등을 위해 빌리는 단기 렌터카 매출 감소와 중고차 판매시장의 공급과잉 전망은 세계 렌터카업계이 공통된 걱정거리입니다. 실업 급증으로 수요 기반이 약해지고 있어서입니다. 고성장을 만끽해온 국내 기업들도 올해는 실적 눈높이를 많이 낮춰야 할 것 같습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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