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여행사들이 1분기 참담한 실적표를 받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저비용항공사(LCC)는 물론 여행사들도 모조리 적자로 돌아섰다. 코로나19가 4월부터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어 2분기엔 실적이 더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대한항공은 지난 1분기 56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전년 동기(2384억원 흑자)보다 영업이익이 2950억원 줄며 적자로 전환했다. 같은 기간 매출도 2조3523억원으로 22.7% 줄었다.
아시아나항공도 1분기 208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적자 폭이 작년 같은 기간 118억원의 17.6배로 커졌다. 매출은 1조1295억원으로 21.5% 감소했다. 이로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등 6개 국내 항공사의 1분기 영업손실은 4203억원으로 집계됐다. 비상장사인 이스타항공 에어서울 플라이강원 등을 더하면 항공사들의 손실은 더 커진다.
여행사들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1위 여행사인 하나투어는 1분기 영업손실이 275억원이라고 발표했다. 매출은 1108억원으로 1년 전(2228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하나투어가 2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낸 건 처음이다. 모두투어도 14억원의 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업계에선 2분기 실적을 더 우려하고 있다. 4~5월 들어 미국과 유럽 중남미 등에 코로나19가 더 확산한 데 따른 것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해외여행 성수기(6~9월)를 앞두고 있는데도 항공권 예약이 거의 없다”며 “중간급 여행사는 대부분 파산 위기”라고 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여행 종사자 10만명 중 9만명이 휴직 중…"여름 지나면 절반 폐업"
대형 여행사 15년차 직원 A씨. 택배와 대리운전을 뛰는 ‘비자발적’ 투잡 생활이 석 달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3월부터 유급휴직에 들어가면서 그의 한 달 월급은 80%로 쪼그라들었다. 앞날이 더 태산이다. 이달부터 회사 전체가 무급휴직 체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A씨는 “아르바이트 자리야 하나 더 알아보면 되겠지만 회사가 버틸 수 있을지가 더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끝이 안 보인다”
여행업계가 생사기로에 섰다. 업계에선 “비명 지를 힘도 없다. 이대로라면 여름을 무사히 넘길 여행사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퍼지고 있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등 주요 여행사의 지난 3월 패키지여행 송출객 수는 전년 동월 대비 99%가량 줄었다. 사실상 ‘식물기업’ 상태다.
최근 실적은 ‘참혹’한 수준이다. 하나투어, 모두투어는 올 1분기 각각 1108억2400만원, 442억46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0.6%, 52.1% 급감했다. 2~3월부터 코로나19 여파가 본격화하면서 끝내 마이너스 실적을 받아들었다. 하나투어는 영업이익(-275억3400만원)과 당기순이익(-348억7200만원)에서 모두 적자 전환했다. 모두투어 역시 당기순이익에서 13억9800만원의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비용만 들어가는 상태”라고 했다. 하나투어의 월 지출 고정비는 55억원 안팎이다. 직원 2500명 가운데 80% 이상은 다음달부터 3개월 동안 무급휴직에 들어간다.
다만 노랑풍선은 22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주요 여행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다. 설 연휴 기획전에서 동남아시아, 유럽 상품이 많이 팔렸고 작년에 새롭게 시작한 개별여행 서비스가 호응을 얻어 흑자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TV 광고를 빼고 홈쇼핑 판매를 축소하는 등 선제적으로 비용을 줄인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랑풍선은 물론 모든 여행사의 2분기 성적표는 말 그대로 ‘사상 최악’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3월 12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팬데믹(대유행)을 선언한 이후부터 대다수 국가가 빗장을 굳게 걸어잠갔기 때문이다. 당장 여행사들의 5~7월 예약률이 전년보다 최고 99%까지 떨어졌다. 국내 1위 하나투어만 해도 2분기 월별 예약률이 4월 -99.6%, 5월 -97.6%, 6월 -91.3%로 곤두박질쳤다. 업계 관계자는 “여행업은 해외상품 매출 비중이 80%나 돼 외생변수에 치명적”이라며 “일본 불매운동에 홍콩 시위 사태, 중국의 한한령이 겹친 가운데 코로나19까지 덮쳐 답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가을 오기 전에 절반 문 닫을 수도”
업체 대다수는 무급휴직 시행 등 ‘생존모드’를 가동 중이다. 여행업협회중앙회에 따르면 국내 여행업계는 등록 여행업체 총 2만2283곳에 9만9077명(2018년 기준)이 종사하고 있다. 이 중 9만여 명이 휴직 중이라는 게 협회의 추정이다.
코로나19 장기화를 대비한 ‘버티기용’ 실탄 확보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하나투어는 지난 4월 서울 인사동에 있는 시내면세점을 전면 폐쇄했다. 오는 9월 계약이 만료되는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 면세점도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유럽과 동남아 등에 있는 해외법인 30곳을 대부분 폐쇄할 방침이다. 20여 개에 이르는 국내 계열사 일부 매각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팔 자산이 있는 대형 여행사는 그나마 버틸 힘이라도 있다. 국내 10위권인 B사는 폐업을 고려 중이다. 고용유지지원금으로 버티고 있지만 유동성이 악화되면서 더 이상 급여를 주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B사 대표는 “직원들에게 실업급여라도 받으라고 퇴사를 권했다. 30년 넘게 여행 사업을 해오면서 외환위기부터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까지 다 겪었지만 이번처럼 고통스러운 적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여행업협회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달 29일까지 295개 여행사가 폐업했다.
여행업계의 전망은 암울하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주요 여행사 10곳을 상대로 한 긴급 설문 결과 여름 성수기까지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으면 20대 여행사 중 “최소 4개에서 많게는 10개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예측(3개사)이 나왔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지난달 6일 내놓은 ‘코로나19로 인한 신흥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충격’ 보고서에서 한국 내 코로나 사태가 6개월간 이어질 경우 한국 관광업계의 최대 피해 규모가 3조7000억원을 넘어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이선우/김재후 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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