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시설 아닌 마을에 답 있다

입력 2020-05-18 17:41   수정 2020-05-19 00:06

요즘 상가에 조문하러 가면 종종 상주에게 고인이 편찮으신 기간 어디에서 모셨는지 물어본다. 그런데 의외로 이 질문이 대부분 상주를 곤혹스럽게 한 것 같다. 참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다 가셨다는 답변을 들은 적이 없었으니까.

어떤 이는 하루빨리 베이비붐 세대를 ‘불효자 죄책감’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이 세대는 서서히 현직에서 밀려나면서 30여 년의 여생을 걱정해야 할 나이가 됐다. 그러나 자신이 아닌 부모님을 위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선택하면서 경제적 부담 능력과 어르신의 편의성 사이에서 다들 고민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저렴하면서도 품격이 있는 요양 서비스가 제공되는 공간이 목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다 보니 최근 노인전용주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 여당은 총선에서 어르신 지원주택을 전국 226개 자치단체마다 한 곳 이상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다. 공공임대주택에 노인용 시설과 각종 노인 지원 프로그램이 결합된 모델이지만, 입주 대상자는 건강한 노인이다. 전문적인 요양과 의료 서비스가 결합된 노인주택 모델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건강보험공단은 2018년 약 78조원을 건강보험 진료비로 지급했는데, 이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환자의 진료비가 약 32조원으로 41%를 차지했다. 전년도 노인 진료비 총액과 비교해선 12.4% 늘었다. 요양병원이나 요양보험에서 노인의 건강을 위해 부담하는 비용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도 시설의 만족도는 높지 않다.

경제적 부담보다 더 참기 어려운 현실은 우리나라 노인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과 노인 고용률은 노인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일해야 하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난과 외로움은 세계 최고의 노인 자살률로 귀결되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하기에 바빠 노인들을 배려할 여유조차 갖지 못한 탓이다.

시설보다는 주택이 인간적이다. 병원보다는 주택이 훨씬 저렴하다. 그러나 공공임대주택에서의 자살률이 판자촌보다 높은 통계도 있으니 저렴한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도 없다. 공공임대주택에 풍부한 지원 서비스와 마을공동체 프로그램이 결합돼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호그벡(De Hogeweyk) 마을은 중증 치매 환자들이 주민인 마을이다. 치매 환자를 시설로 격리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해서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주택과 요양, 치유를 함께하는 마을을 설계해야 한다. 휴양과 요양이 결합된 은퇴자복합타운(CCRC)도 농촌 개발과 노인 요양의 훌륭한 대안이다.

노인이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 현재 어르신들의 불행은 베이비붐 세대의 더 우울한 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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