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과 파산의 갈림길에 선 명지학원의 운명은? [남정민 기자의 서초동 일지]

입력 2020-05-19 15:47   수정 2020-05-19 16:19


명지학원은 명지대와 명지전문대를 비롯해 초·중·고교 등을 모두 운영하는 국내 대표적인 학교법인입니다. 2020년 4월 기준 명지대학생 1만 9600여명을 비롯해 2만 6000여명의 학생과 2600여명의 교직원이 명지학원에 속해있습니다.

이런 명지학원이 2018년 12월 채권자로부터 첫 파산 신청을 당했고, 지난해 12월 두 번째 파산 신청을, 그리고 지난 8일에는 회생 신청을 당했습니다. 도산 절차에서 파산이란 채무자의 모든 재산을 처분해 채권자들에게 나눠주는 과정을 뜻합니다. 회생은 채무자의 빚을 일부 감면해주고 남은 부분은 앞으로 사업 등을 계속하면서 얻을 수입으로 변제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하면 '빚 갚을 시간을 주는 제도' 정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명지학원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채권자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등 회생 절차가 실패할 경우 폐교까지 고려해야 할 수 있습니다.

법원은 파산 신청보다 회생 신청을 먼저 검토하기 때문에 지난해 접수된 파산 신청은 현재 관련 절차가 잠정 중단된 상태입니다. 만약 지난 8일 접수된 회생 신청이 어그러질 경우 법원은 파산 신청을 검토하게 됩니다. 그리고 법인파산 절차는 파산 선고 당시 법인이 갖고 있던 재산을 변제한 후 법인이 소멸되는 식으로 마무리 됩니다. 때문에 앞으로의 명지학원의 '운명'은 서울회생법원에서 이뤄질 채무 조정 절차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채무자 회생법?(저자 : 전대규)에 따르면 도산 절차는 '빚을 갚을 수 없는 채무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이 빚을 지게 되는 이유는 본인의 게으름에서 비롯될 수도 있겠으나 성실하게 살았는데도 여러 피치 못할 사정으로 빚더미에 앉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본인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가족 중 누군가 보증을 잘못 서 수십억원대의 빚을 떠안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때 그 사람에게 평생 빚을 갚으며 살라고 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공식적인 법적 절차를 통해 빚을 조정해주고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는 게 맞을까요. 도산절차는 후자가 맞다는 생각에서 등장했습니다. 2017년 3월 서울중앙지법의 파산부에서 독립해 국내 첫 도산전문법원인 서울회생법원이 탄생했습니다.

2017년 3월 이전까지 국내 법원체계는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 외에 특허법원, 가정법원, 행정법원 등의 전문법원을 포함해 총 6종류의 법원들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이후 회생법원이 생기면서 총 7종류가 됐습니다. 서울회생법원에는 법인 회생 사건을 담당하는 합의부가 12개, 그리고 개인 파산, 개인 회생 등의 사건을 담당하는 단독재판부가 52개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이 있는 서울법원총사 본관이 아니라 별관에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자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기도 합니다.)

다시 명지학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위 사건들은 모두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됐습니다. 회생 신청은 채무자 본인뿐만 아니라 채권자, 주주·지분권자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파산 신청은 채무자나 채권자의 신청으로 이뤄지고 예외적으로 법원이 직권으로 하기도 합니다. 주주·지분권자에게는 파산신청권이 없습니다.



현재 명지학원에 대해 진행 중인 절차는 법인 회생 절차입니다. 명지학원은 지난 8일 500여억원의 빚을 갚지 못해 SGI서울보증으로부터 회생 신청을 당했습니다.

발단은 2004년 '명지학원 사기 분양 의혹 사건'입니다. 명지학원은 경기 용인시 명지대 캠퍼스 내에 지어진 실버타운 ‘명지 엘펜하임’을 분양하며 “9홀짜리 골프장을 지어 평생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의 광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골프장은 건설되지 못했고 분양 피해자들은 분양대금을 돌려달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SGI서울보증 역시 당시 입주자들에게 보증서를 끊어줬다가 명지대가 입주자 190여 명에 대해 분양계약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자 회생 신청을 접수하게 됐습니다.

회생 절차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한 채무자의 빚을 조정해 다시 살아나게끔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채무자가 빚 때문에 사업을 계속할 수 없거나 파산할 위험이 있을 때 법원의 결정 하에 개시됩니다. 절차가 시작되면 채무자의 재산은 '법률적으로' 제 3자인 관리인에게 처분권이 넘어갑니다. 다만 대부분 관리인을 따로 선임하지 않고 기존 법인 대표자나 채무자가 관리인으로 간주되곤 해 겉으로는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이후 법원은 채권자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인들과 채무자 사이의 법률관계 조정을 도와줍니다. 관리인이 사업 재구축의 내용 등을 담아 회생계획안을 작성하고 이 계획안이 법원에서 인가가 날 경우 관리인은 그 회생계획을 수행하면 됩니다. 하지만 법원에서 인가가 나지 않을 경우 임의적 파산선고가 내려집니다. 인가 결정 전에 회생절차가 폐지돼 임의적 파산선고가 내려질 수도 있습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 286조 등에 따르면 법원이 정한 기간 내에 회생계획안을 제출하지 못했거나 제출했더라도 그 내용이 결의에 부칠만한 것이 되지 못할 때 법원은 직권으로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명지학원이 앞으로의 회생 절차 하나하나에 남다른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명지학원의 회생 절차가 실패해 파산 절차가 시작될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법리적으로 파산이 선고되면 명지대, 명지전문대, 초·중·고교 등 5개 학교의 폐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받을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은 불보듯 뻔합니다. 때문에 법원도 첫 파산 신청에 대한 절차를 어느 정도 마무리해 놓고도 당사자간 최종 합의를 유도하기 위해 심문절차를 한 번 더 진행하는 등 선고를 고심했습니다. SGI서울보증이 파산 신청이 아닌 회생 신청을 한 것도 명지학원이 운영하는 학교들의 폐교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첫 파산 신청은 명지학원이 채권자와 합의하면서 각하됐지만 두 번째 파산 신청은 현재 진행 중인 회생 절차가 실패할 경우 다시 시작됩니다. 두 번째 파산 신청을 낸 채권자들은 역시 명지 엘펜하임 사기분양 의혹의 피해자로 분양대금 약 4억3000만~9억700만원(총 56억7000여만원)을 5년 넘게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법원이 파산을 선고할 때는 그 연월일뿐만 아니라 정확한 시각까지 기재합니다. 파산 선고가 갖는 파급력이 중대함으로 그 시점도 명확해야 한다는 취지에서입니다. 물론 법원이 그 전에 '플랜 B'를 발동할 수 있습니다. ‘파산선고 전의 보전처분’ 입니다. 채권자와 채무자 명지학원 사이의 입장차가 도저히 좁혀지지 않을 경우 채무자회생법 제323조에 따라 법원은 파산선고 전이라도 직권으로 채무자의 재산에 관해 보전처분을 명할 수 있습니다. 법원은 명지학원이 자금여력이 있는데도 빚 갚기를 미룬다고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경우 모든 물품 구매에 따른 금전 거래 등을 막는 조치까지 취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방법에도 불구하고 명지학원에 최종적으로 파산이 선고된다면 향후 청산절차를 거쳐 그 법인격은 소멸됩니다.

서울회생법원의 한 판사는 "회생 절차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며 "폐교는 그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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