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때문에 손님 뚝 끊겼다…파산 지경"

입력 2020-05-20 14:47   수정 2020-05-20 15:36


경기 고양시 일산 한 백화점에서 김모 씨(54)가 운영하는 한 푸드코트의 떡볶이 매장의 매출은 이달 80% 넘게 줄었다. 올 초까지 월 300만원 가량 벌었지만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이후부터 되레 매출이 급감했다. 백화점에 매달 판매수수료를 내고 입점한 푸드코트의 가게에서는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손님들 대부분이 지원금 사용이 가능한 가게로 가 식사를 하는 바람에 요즘 김 씨네 식당은 썰렁했다. 김 씨는 “코로나19로 매출이 반토막나더니 지원금 때문에 또 줄었다”며 “이달은 많이 벌어봐야 40만원 가량 집에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백화점 푸드코트·식당가 한산

정부의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이달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초유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각 가정의 소비를 촉진해 소상공인을 돕고 경기를 진작하겠다는 목적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사용처를 놓고 불합리하다는 비판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백화점·대형마트 등에서는 사용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백화점 내 입점한 푸드코트, 식당 등도 규제의 대상이 됐다. 정작 영세·중견기업 및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가게는 수혜를 입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지난 19일 서울 관악구 한 백화점의 푸드코트는 텅 비어 있었다. 식당가에도 고객의 발길은 뜸했다. 각 매장별로 식사를 하는 고객은 많아야 2~3명에 불과했다. 일부 매장은 직원들이 할 일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 백화점에서 식당에 종사하는 한 직원은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줄긴 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가라앉은 분위기는 처음”이라고 전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쇼핑몰 사용을 일괄적으로 막는 바람에 소외된 매장들은 불만이 태산이다. 롯데하이마트에서 국산 전자제품 사는 건 안 되는데, 애플 매장에서 수입품 사는 건 가능한 식이다. 개인 사업자가 많은 백화점 내 식당이나 푸드코트 수수료형 가게에서 식사를 하는 건 안 되지만, 청담 명품거리에서 가방을 사고 강남 고급 식당에서 코스 메뉴를 먹는 건 가능하다.

백화점 내에서도 역차별 논란은 불거진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지원금으로 국산 브랜드 의류를 사는 건 대부분 불가능하지만, 일부 유니클로·자라·H&M 등에서 수입 의류를 구매하는 건 되기 때문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입점한 매장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월세형 매장과 수수료형 매장이다. 월세형은 매달 일정 금액의 임차료를 내고 마트 안의 공간만 빌려 장사를 하는 가게다. 마트에서는 식품코너 바깥에 있는 안경점과 약국, 미용실 등이 해당되지만 백화점에서는 주로 유명 브랜드 일부만 포함된다. 반면 수수료형 매장은 월 매출에서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지급하는 임대 형태다. 통상 30% 가량을 수수료로 지급한다.

이중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임대료를 내는 입점업체들은 지원금 사용이 되지만, 월 매출에서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지급하는 매장은 규제 대상이다. 매출이 백화점에 소속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에 지원금 차별까지…"파산 지경"

규제 대상이 된 업체에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가게는 피해가 극심하다. 영등포에 위치한 백화점에서 여성의류를 판매하는 유모 씨(49)는 “백화점에서는 월세를 꼬박꼬박 내는 매장은 잘나가는 유명 브랜드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수수료 체제를 따르고 있다”며 “백화점에 수수료를 내고 입점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원금 사용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식당가와 푸드코트의 입점된 매장 가운데 70~75%는 영세·중견기업 및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업체로 추산된다. 이 중 절반 가량은 코로나지원금 지급 이후 순이익 이 70~80% 줄었으며, 나머지 반은 적자를 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로 입점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백화점 측에서 수수료를 깎아주거나 연기해주고 있다. 하지만 영세업자나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매장은 매출단위가 워낙 작다보니 매출 신장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

대구의 한 백화점에서 한식 푸드코트 운영하는 최모 씨(58)는 최근 가게를 내놨다. 운영 경비도 안나와 생계가 막막하지만 가게를 보러오는 사람은 없다. 최 씨는 “은퇴 후 생계용으로 이 푸드코트에서 장사를 시작했다”면서 “코로나19 사태로 힘들었는데 지원금 지급까지 이어지면서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소상공인이 왜 아니냐”고 반문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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