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정부의 의아한 ‘추락천사’ 금융지원

입력 2020-05-25 15:01   수정 2020-05-25 15:03

≪이 기사는 05월25일(09:14)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19일 채권시장안정펀드 매입 대상에 ‘폴른 엔젤(Fallen Angel)’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포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기업금융시장에서 폴른 엔젤이란 ‘투자 적격’ 신용등급에서 ‘투자 부적격(junk)’ 등급으로 떨어진 기업을 말합니다. 불과 한 단계(notch) 차이라 할지라도 한 번 부적격 영역으로 넘어가면 자금 조달이 급격히 어려워지는데요. 마치 ‘다시 올라오기 어려운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처지’라는 의미에서 ‘추락한 천사’라고 부릅니다.

금융위의 이번 발표는 그동안 비교적 양호하게 재무안정성을 관리해왔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예측불가 변수 탓에 어려움에 빠진 기업을 도와주겠다는 의도입니다. 앞서 미국도 지난 2월 이후 포드(자동차), 메이시스(백화점), 델타(항공) 등 폴른 엔젤이 쏟아지자 이들을 금융지원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밝혀 관심을 끌었죠.

그렇다면 앞으로 채안펀드 돈을 받을 한국의 추락 천사에는 누가 있을까요. 참고로 투자 적격과 부적격을 나누는 경계는 ‘BBB-’ 이상과 ‘BB+’ 이하입니다. 신용평가사들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적격등급이 10종(AAA~BBB-), 부적격이 10종(BB+~D) 정도입니다.

의아하게 느껴지겠지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폴른 엔젤은 현재 한 곳도 없습니다. 한국에선 코로나19 확산 이후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추락한 기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폴른 엔젤이 등장하지 않은 핵심 원인은 가장 근접한 후보군인 BBB- 등급 기업 자체가 지극히 적다는 데 있습니다. 전체 평가(신용등급 보유) 기업의 1%에 불과하거든요. 일례로 한국신용평가 등급 기준으로는 모두 다섯 개사, 전체의 1.1%입니다.

이례적으로 적은 BBB- 등급은 한국의 독특한 회사채시장 구조에 기인합니다. 기업들이 신용등급 평가를 의뢰하는 가장 흔한 목적 중 하나가 공모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서인데요. 한국의 기관투자가들은 회사채 투자에 보수적인 편이어서 BBB급(BBB+~BBB-) 회사채를 잘 사주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BBB급 회사채 시장 기반 자체가 성장하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추락할 수 있는 천사 후보들도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이죠.

그렇다면 금융위는 왜 굳이 폴른 엔젤 지원을 언급한 것일까요. 단순히 책상에서 미 중앙은행(Fed)의 ‘회사채 매입대상 발표’를 모방한 것일까요?

아니라면 둘 중 하나입니다. 소수의 BBB- 기업 가운데 조만간 도와줘야 할 폴른 엔젤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량 기업들조차 여러 단계 떨어져 폴른 엔젤이 속출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려는 차원일 것입니다.

어쨌든 가장 먼저 폴른 엔젤이 될 수 있는 BBB- 기업은 국내 신용평가 3사 기준 10여곳이 전부입니다. 여기에는 아시아나항공, 신원, 두올, 신성통상, 위니아딤채, 에스케이에스앤디, 화승R&A, 동방, 가온미디어 정도가 포함됩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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