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中 충돌, 환율전쟁 비화 조짐…'금융안보' 점검할 때다

입력 2020-05-26 18:27   수정 2020-05-27 00:10

중국 인민은행이 위안화 환율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연일 끌어올려(위안화 가치 절하) 작지 않은 파장이 우려되고 있다. 갈수록 격화하는 미·중 갈등이 ‘환율 전쟁’으로까지 비화되면 한동안 안정세를 이어온 한국 등 신흥국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이 다시 고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민은행은 어제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을 전날보다 0.12% 올린 7.1293위안으로 고시했다. 전날 0.38%를 상향 조정한 데 이은 조치다. 이로써 위안화 가치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2월 27일 이후 1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조치는 미국의 전방위 압력에 맞서 중국이 ‘환율 카드’를 들고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對)중국 무역적자 축소를 표방해 온 미국 입장에서 위안화 약세가 부담스러운 만큼 중국이 환율을 지렛대로 미국을 압박할 것”(KB증권)이라는 관측이다. 일각에선 중국 경제 위축에 따른 자연스러운 조정이라는 분석도 있다. 올해 중국이 대규모 재정적자가 예상돼 투자자들이 위안화를 팔고 달러를 사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 미·중 양국과 긴밀한 교역상대인 한국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위안화와 연동되는 경향을 보이는 원화가치도 동반 하락해 외국인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먼저 거론된다.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 12일 1217원을 ‘바닥’으로 그제 1244원 선까지 올라 두 달 만에 1240원을 웃돌았다. 주가 강세에도 외국인은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3조530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수출에도 불리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올초 체결된 미·중 1차 무역합의의 파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대중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의 중간재가 피해를 입게 된다. 미국은 위안화 환율이 지난해 8월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달러당 7위안 선을 돌파(포치·破七)하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막대한 파장이 우려되는 만큼 정부는 위안화 약세가 가져올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시급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급속한 재정지출 확대로 건전성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판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만큼 대응수단이 제한적이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서둘러, 더 큰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지적했듯, 재정을 풀더라도 뼈를 깎는 지출 구조조정이 동반돼야 한다. 규제완화도 기득권 눈치보기에서 벗어나 보다 과감해져야 할 것이다.

통화정책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내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득실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한국은행이 발권력까지 동원하는 마당에 떠밀리듯 금리를 내리는 것은 오히려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 금융·외환위기는 한순간에 국가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더 파국적이다. ‘금융 안보’ 강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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