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법 불신이 대법원으로까지 확산되지는 않았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전개를 보면 대법원마저 ‘이상 기류’에 휩싸이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법부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은 그제 소위 ‘진보 판사’들이 주도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재판’을 강조했다. “국민을 중심에 둔 재판이 좋은 재판”이라는 그의 언급은 최근 치러진 총선 민의를 재판에 고려하라는 취지로 오해될 소지가 다분하다. 가뜩이나 여권에서 한명숙 전 총리와 KAL858기 추락사건 재판을 문제 삼고 나선 시점에서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다.
대법원장의 주문은 오락가락하는 대법원 판결과 맞물리며 사법 신뢰를 추락시키고 있다. 대법원 3부가 ‘채권추심원도 근로자’라고 판결한 지 불과 2주 뒤 대법원 1부는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업무의 종속성’ ‘지휘감독 여부’ 등 동일한 쟁점에 대한 정반대 결론은 대법원마저 ‘로또 재판이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재판부 내 대법관 중 ‘진보 성향’이 많으냐, ‘보수 성향’이 많으냐에 따라 판결이 엇갈렸다는 해석이 나온다는 점에서 사법신뢰 추락은 불가피하다.
‘김명수호’는 출범할 때부터 ‘코드 재판’과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가 컸다는 점에서 파장이 작지 않다. 하급심의 엇갈린 판결을 대법원이 수습하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대법원이 혼란의 주체로 등장했다는 점도 당혹감을 키운다. 대법관마저 헌법과 법률을 따르기보다 ‘법관의 양심’을 빙자한 주관적 판단을 앞세운다면 법적 안정성은 형해화되고 말 것이다. ‘헌법보다 떼법’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사법부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을 맴돈 지 오래다. 대법원이 ‘법치의 최후 보루’는커녕 사법부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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