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택에 사치를 부리면 귀신이 엿보고, 먹고 마시는 데 사치를 부리면 신체에 해를 끼치며, 그릇이나 의복에 사치를 부리면 고아한 품위를 망가뜨린다. 오로지 문방도구에 사치를 부리는 것만은 호사를 부리면 부릴수록 고아하다. 귀신도 너그러이 눈감아줄 일이요, 신체도 편안하고 깨끗하다.” 1780년 유만주의 일기 《흠영》에 나오는 글이다. 청빈한 선비들도 명품 문방구에 대해서는 구매욕을 참기 어려웠나 보다.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는 시전지의 달인이었다. 시전지는 시를 쓰는 종이다. 이덕무는 탄호전(彈毫箋)이란 시전지를 직접 만들어 썼다. 시를 써서 주고받는 일은 선비들의 우아한 대화법이었다. 시전지 위에 펼쳐진 시(詩), 서(書), 화(畵)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인스타그램이었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다. 손으로 직접 쓰는 거라곤 축의금, 부의금 봉투가 고작이다. 뭘 써보려 해도 글씨가 옹색하다. 우리의 손은 어느새 연필이나 펜을 쥐기보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데 더 익숙해졌다. 가운뎃손가락 손톱 옆 굳은살도 없어졌다. 기술의 눈부신 성장은 우리의 삶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더욱 빠르고 더욱 편리하게.
그런데 뭔가 아쉬운 건 나만의 느낌일까. 사람과의 대면이 사라진 디지털 시대. 로봇이 음식을 주문받고, 커피를 내려준다. 시장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가격 흥정도 사라지고, 덤을 얹어주던 인심도 사라졌다. 아날로그 감성으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나로서는 디지털의 온도가 아직은 차다. 만년필의 살가움을 좋아하는 나의 지인처럼 말이다.
직원들에게 낙서를 권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외신을 본 적이 있다. 그중 대다수가 정보기술(IT) 기업이라는 사실이 역설적이다. 낙서를 사라지게 한 장본인들이 이제는 낙서를 장려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낙서가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날로그의 힘이다.
가끔은 컴퓨터를 끄고 검색 대신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오래전에 썼던 만년필을 꺼내본다. 눈물이 그대로 마른 듯 펜촉 위에 잉크가 말라 있다. 어디서 떨어뜨렸는지 뚜껑에 금이 가 있다. 몸통 여기저기에 긁힌 자욱도 보인다. 애처로움이 인다. 만년필을 세척하고 잉크를 담아 종이 위에 시 한 편을 옮겨 적는다. 아! 이게 얼마 만인가! 멀리서 찾아온 벗을 만난 듯 반갑다. 나의 손과 만년필의 교감, 아날로그는 이런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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