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옥정(풍기특산물영농조합법인)’과 ‘천녹정(한국인삼공사)’
이름이 유사한 데다 건강기능식품 브랜드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천옥정 상표권자가 소비자들이 두 제품을 혼동할 수 있다며 한국인삼공사를 상대로 상표권침해금지 소송을 냈다. 하지만 1심에 이어 항소심을 맡은 특허법원도 “(두 상표가) 소비자들이 오인할 정도로 유사하지 않다”며 인삼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허법원 제22부(부장판사 김경란)는 풍기특산물영농조합법인(풍기영농조합)이 인삼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침해금지 소송 항소심에서 지난달 28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작년 1심에서도 원고가 패소했었다.
풍기영농조합은 2011년 11월 천옥정이란 상표를 등록했다. 인삼공사는 2017년 3월 천녹정이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풍기영농조합은 인삼공사가 자사 제품과 유사한 표장을 사용해 상표권을 침해했다고 생각했다. 표장이란 기호, 문자, 도형 등 상품의 출처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표시를 일컫는다. 풍기영농조합은 인삼공사에 손해보상금 1억원도 요구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이어 2심을 맡은 특허법원도 천옥정과 천녹정은 소비자가 혼동할 염려가 없어 유사 상표가 아니라고 봤다.
법원은 먼저 이 사건에서 ‘정’이라는 음절은 요부(要部·중심적인 식별력을 가진 부분)가 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홍삼엑기스를 판매하는 다수의 업체가 관용적으로 ‘원기정’, ‘황풍정’, ‘명옥정’ 등 상품명 끝음절에 ‘정’을 붙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천옥’과 ‘천녹’을 유사한 표장으로 볼 수 있을지가 쟁점이 됐다. 법원은 “첫음절의 초성 및 중성, 둘째 음절이 같은 발음으로 호칭돼 유사하다고 볼 여지도 있다”면서도 “어두 부분이 강하게 발음되는 우리나라의 언어관행 등에 비춰보면 그 호칭이 일반 수요자나 거래자가 혼동할 정도로 유사하다고 다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인삼공사가 2017년 천녹정을 출시하기 전에 ‘천녹삼’과 ‘천녹환’, ‘천녹톤’, ‘천녹단’ 등 ‘천녹’을 요부로 하는 다수의 상표를 등록해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이 같은 제품들은 이미 대대적으로 광고되고 언론에 보도됐으며 판매량도 상당했다. 재판부는 “천녹정을 출시할 무렵부터 일반 수요자는 천녹정을 천옥정과 구별해 인식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며 “천녹정과 천옥정을 오인·혼동하거나 그런 염려가 있었을 것이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풍기영농조합은 천옥정과 천녹정이 대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건강보조식품 코너에서 모두 함께 판매되는 만큼 소비자가 혼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펼쳤다. 하지만 법원은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원고 상품의 매장은 원고의 대표 브랜드인 ‘천제명’이, 피고 상품 매장엔 피고의 대표 브랜드인 ‘정관장’이 크게 표시돼 있고 인테리어도 별도로 설치돼 있다”며 “다른 상표의 상품을 취급하는 별개의 매장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구분된 점을 감안할 때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풍기영농조합은 이 같은 상표권침해금지 소송을 내는 동시에 천녹정 상표를 무효로 해달라는 심판도 청구했다. 후자에 대해서도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 모두 풍기영농조합의 청구를 기각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상표팀의 원유석, 김종석 변호사 등이 인삼공사를 대리해 승소를 이끌어냈다. 김앤장 관계자는 “이번 판결을 통해 연간 매출액이 500억원 이상인 천녹정의 상표권을 지키고 상표권 침해 위험에서도 벗어나게 돼 다행”이라고 밝혔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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