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풍속화가 김홍도, 병풍화 대가이기도 했다

입력 2020-05-28 17:54   수정 2020-05-29 02:57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한 단원 김홍도의 ‘군선도’는 세로 132.8㎝, 가로 575.8㎝의 대작이다. 곤륜산의 여신 서왕모의 생일잔치에 초대된 신선들의 행렬을 묘사한 것으로, 원래 8폭 병풍화였다.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을 그린 ‘해상군선도’는 원래 궁중화나 병풍그림의 단골 소재였다. 단원은 그러나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이 아니라 육로나 창공에서 움직이는 신선들로 묘사했다. 등장인물의 표정도 기존 군선도와 달리 친근하고 정감어린 모습이다. 전통적인 주제는 유지하면서도 배경을 없애고 파격적으로 구성했던 것이다.

장진성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단원 김홍도: 대중적 오해와 역사적 진실》에서 ‘군선도’를 단원이 엄격하고 정묘한 궁중화 화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법으로 그린 첫 역작이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단원이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로만 알려진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한다. 단원은 단지 풍속화만 잘 그린 게 아니라 산수화, 도석화(도교와 불교 관련 그림), 화조화, 인물화, 궁중화 등 모든 장르에서 천재적 기량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특히 단원은 ‘병풍화의 대가’였다며 병풍그림에서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병풍 그림은 부채나 화첩, 족자, 두루마리 그림 등에 비해 월등히 커서 그림솜씨가 뛰어나야 한다. 또한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병풍을 버리고 새로 그려야 한다. 대가의 능숙한 솜씨가 아니면 그릴 수 없다는 것. ‘군선도’를 그릴 때 단원의 나이는 불과 32세였다. 그런데도 단원은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과 자세를 정확히 포착해 속필로 그려내 화면 전체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었다.

저자는 ‘군선도’를 필두로 ‘행려풍속도’ ‘서원아집도’ ‘모당평생도’ ‘해산도병’ ‘주부자시의도’ ‘삼공불환도’ 등 단원의 병풍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그러면서 단원을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풍속화가로만 평가하는 것은 ‘대중적 오해’라고 지적한다. “단원은 18세기 후반 동아시아 화단을 빛낸 거장 중의 거장”이라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역사적 진실이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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