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름다운 시절

입력 2020-05-31 18:17   수정 2020-06-01 00:05

책 《라 벨르 에뽀끄(La Belle Epoche)》를 최근 읽었다. 19세기 말 시대를 풍미한 열강들의 주요 스토리를 만화로 그린 책으로, 역사를 신선한 시각으로 다루고 있어서 읽기 편했고, 읽은 후 여운이 진동했다. 유튜브나 킨들과 달리 종이책을 넘기는 맛을 재발견하는 덤도 얻었다. 역사에서 ‘아름다운 시절’은 항상 승자의 관점에서 아름다웠을 뿐, 반대편에는 가혹한 시절임을 담담히 펼친 작가의 내공이 놀라웠다.

아름다운 시절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 몇몇 선각자들의 탁월한 비전과 담대한 추진력, 이것이 시대정신과 공진(共振)하고 운도 따를 때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이었다. 세계 각국이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어 나가고 그 과실을 즐기고 있을 시기에 한국은 어떠했는가. 조선이 몰락하고 일본에 강제 병합된 과정은 이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대조적이지 않은가.

한국의 반만년 역사에서 아름다운 시절은 언제였을까. 국가 시스템이 크게 변한 때가 몇 차례 있었다. 삼국통일, 고려, 조선의 건국, 해방, 민주국가 수립 등등. 그러나 아름다운 시절로 이들을 부르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역사학자들이 모두 근대국가 일본의 탄생이라고, 일본의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부는 것은 가치관·정치제도·사회구조의 획기적 변화가 이때 있었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일본 국민에게 자부심과 성취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이에 견줄 만한 시절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세계 각국을 다니다 보면 요즈음의 한국을 오히려 부러워하는 칭찬을 자주 접한다. 최빈국에서 주요 20개국(G20) 가입국으로, 정보통신·문화산업·교육 및 의료서비스에서 1등 국가로 짧은 시간 내 변신에 성공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중동, 중남미, 동유럽,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한국은 ‘아름다운 비약’을 달성한 국가이자 롤모델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 국민은 이를 잘 모른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에게 ‘아름다운 시절’의 기준은 더 높고, 더 훌륭해야 하기 때문이리라.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불평등·모순·비효율을 더 잘 고쳐야 ‘아름다운 국가’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겸손한 동양적 사고방식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와 같은 성숙한 시민의식이 한국의 본질적인 힘이며, 이는 쉽게 다른 나라가 따라오기 어려울 것이다.

끝으로 한 개인에게 아름다운 시절은 무엇일지도 생각해 본다. 무심히 허리를 휘도는 산바람을 맞으며 붉은 노을을 마당 한끝에서 바라볼 때, 가슴속에서 후회가 저려 오지 않는다면 지금이 바로 한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시절이 아닐까. 떳떳하게 살아온 시절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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