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총리의 발언은 대규모 경기부양책의 부작용을 경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 속내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00%를 넘어선 총부채 부담으로 돈풀기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중국 정부의 고민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부채로 인식 안 되는 특별국채
중국은 이번 전인대에서 총 6조위안(약 1037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놨다. 특별국채 발행과 재정적자 확대로 1조위안씩 총 2조위안을 마련해 민생 안정에 활용하기로 했다. 인프라 투자에 주로 쓰이는 지방정부의 특수목적채권 발행 규모는 지난해 2조1500억위안에서 올해 3조7500억위안으로 늘렸다.
하지만 작년과 중복되는 부분 등을 제외하면 새로 투입하는 자원은 지난해 GDP(99조위안) 기준 4% 안팎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과 일본, 독일, 영국 등이 GDP의 10% 이상을 쓰는 것과는 큰 차이다. 중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008년 당시 GDP(32조위안)의 12%인 4조위안을 쏟아부었던 것과도 대조적이다.
부양책 가운데 특별국채는 중국 정부의 고민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특별국채 발행은 이번이 세 번째이며 경기부양 용도로는 처음이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엔 은행 자본 확충 목적으로, 2007년에는 중국투자공사를 설립하기 위해 활용했다.
특별국채는 회계처리 기준상 정부 재정적자로 인식되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이 국채를 기관투자가 등에 공개 판매할 계획이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두 차례 발행했던 특별국채처럼 결국 인민은행이 우회적 경로를 동원해 사들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도한 기업 채무가 ‘발목’
국제금융협회(IFF)에 따르면 중국의 GDP 대비 총부채 비율(이른바 거시 레버리지)은 지난해 말 300.5%에서 올해 3월 말 317%로 급등했다. 분기 기준 상승폭으로 역대 최고 기록이다. 거시 레버리지는 가계·기업·정부의 국내 부채를 모두 합한 값이 GDP보다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비율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거시 레버리지가 빠르게 상승하는 국가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중국의 거시 레버리지는 미국(작년 말 326.3%)과 일본(539.7%) 등 선진국에 비해선 낮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은 금융업과 정부 부채가 많은 반면 중국은 기업 부채가 높다는 차이가 있다. 중국 기업(금융업 제외)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150.3%로, IFF의 조사 대상(34개국) 중 홍콩(228.2%)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글로벌 평균(91.6%)의 1.5배에 달한다.
중국이 고도 성장을 유지하던 시기에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차입을 늘려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성장세가 주춤하면서 부실기업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엔 코로나19 여파로 수익성이 급락하면서 이자도 내지 못하는 기업이 속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의 줄도산이 시작되면 돈을 빌려준 은행들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홍콩증시에 상장돼 있는 에너지기업 MIE홀딩스는 지난 12일 달러표시채권에서 발생한 이자 1700만달러(약 208억원)를 갚지 못해 부도를 냈다.
지방정부와 가계의 ‘보이지 않는 부채’도 골칫거리다. 중국 공식 집계에서 지방정부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약 49조위안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여기엔 지방정부가 인프라 투자를 위해 세운 지방정부융자회사(LGFV) 채무는 포함돼 있지 않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18년 LGFV의 부채가 40조위안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했다.
LGFV는 지방정부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채권을 발행해 지방정부 인프라 사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일종의 특수목적법인이다. 채무 현황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거나 담보 가치 대비 너무 큰 금액을 빌리는 등 문제가 누적돼 중국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직접 채권을 발행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 중소기업과 가계가 사금융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그림자금융도 커다란 부담으로 꼽힌다. 감소 추세이긴 하지만 중국 금융당국의 공식 통계로도 그림자금융은 지난해 말 기준 16조위안에 달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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