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세운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가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비행사 두 명을 태운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며 인류 우주개발 역사를 다시 썼다. 지금까지 유인 우주선을 띄운 국가는 미국·중국·러시아 등 3개국에 불과하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 기업이 유인 우주선을 발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머스크 CEO가 2002년 스페이스X를 설립한 뒤 18년간 도전한 끝에 이뤄낸 성과다.
ISS에서 수개월 머물며 연구 수행
스페이스X는 30일 오후 3시22분(미 동부시간 기준·한국시간 31일 오전 4시22분) 미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의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건’ 발사에 성공했다. 크루 드래건을 탑재한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은 굉음을 내며 케네디우주센터 39A 발사대를 떠나 우주로 향했다.
39A 발사대는 1969년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를 쏘아올린 역사적인 곳이다. 크루 드래건에는 NASA 소속 우주비행사 더글러스 헐리(53)와 로버트 벤켄(49) 두 명이 탑승했다. 발사 후 12분 만에 추진 로켓에서 분리된 뒤 고도 약 400㎞ 상공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향하는 궤도에 올라섰다. 크루 드래건은 발사 19시간 정도 지나 ISS에 도킹했다.
자동 주행 방식의 크루 드래건은 기존 우주선과 조작 형태부터 다르다. 일반적인 버튼 대신 테슬라 전기차처럼 터치스크린으로 제어하는 차세대 우주선이다. 기내 온도는 섭씨 18~27도로 유지된다. 스페이스X의 기존 화물 운반용 우주선을 유인선으로 개조한 것으로, 최대 수용 인원은 7명이다.
이번에 탑승한 두 명의 우주비행사는 우주비행 경력이 있는 NASA 베테랑들이다. 헐리는 크루 드래건 발사와 귀환을, 벤켄은 도킹 임무를 담당한다. 헐리는 2011년 7월 미국의 마지막 우주왕복선인 애틀랜티스호에 탑승한 경험이 있다. 두 사람은 ISS에서 짧게는 1개월, 길게는 4개월 동안 머물며 다양한 연구를 하게 된다. 이번 비행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크루 드래건과 로켓이 승객을 태우고 안전하게 우주를 다녀올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이다.
민간 주도로 바뀌는 우주개발
스페이스X의 이번 발사 성공은 우주개발 주도권이 정부에서 민간으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는 걸 상징한다는 평가다. 스페이스X를 비롯해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가 설립한 블루오리진 등 미국의 민간 우주 기업들은 냉전시대 정부 주도 탐사를 ‘올드 스페이스(old space·낡은 우주)’라고 부르면서 스스로를 ‘뉴 스페이스’로 차별화하고 있다.
올드 스페이스가 국가 주도, 군사 목적의 우주개발에 치우친 데 비해 뉴 스페이스는 민간 주도, 상업 목적의 우주개발이 중심이다. 기업가 정신과 무한한 상상력, 효율과 경쟁 등이 뉴 스페이스의 특징이다.
NASA는 이번 발사와 관련해 “미국 우주인을 미국 로켓에 태워 미국 땅에서 쏘아 올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짐 브라이든스타인 NASA 국장은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라. 미래는 현재보다 밝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오늘의 우주선 발사가 세계에 영감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역시 우주개발에서 민간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이날 케네디우주센터를 찾아 발사 장면을 참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사를 지켜본 뒤 “믿을 수 없다”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우주여행 프로젝트에는 다양한 스타트업의 도전도 이어지고 있다. NASA 출신 전문가가 세운 액시엄스페이스는 민간 우주정거장을 세워 우주실험과 우주여행을 실현한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오리온스팬은 고도 333㎞ 상공의 우주호텔에 12일간 묵을 수 있는 950만달러짜리 우주여행 상품을 2022년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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