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법원이 이혼소송서 양육비 사용법까지 규정하면 지나친 간섭"

입력 2020-06-01 12:22   수정 2020-06-01 13:08


법원이 이혼소송에서 양육비 지급 판결을 내리면서 양육비 사용 방법 등까지 세세히 규정하는 것은 “당사자의 재량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A씨가 김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 가운데 양육비 관련 부분을 파기환송했다고 1일 밝혔다.

김씨는 대만 국적인 A씨와 2016년 결혼해 슬하에 자녀 한명을 뒀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성격 및 문화적 차이와 자녀 양육문제 등을 둘러싸고 자주 다퉜다. 이에 A씨는 2017년 11월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이혼을 승인하면서 자녀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A씨를 지정하고, 김씨에게는 면접교섭권만 인정했다. 그러면서 김씨가 A씨에게 위자료로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양육비와 관련해선 김씨가 A씨에게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진 매월 50만원을 지급하고 중학교 입학하기 전까진 매월 70만원을, 성년에 이르기 전까지 매월 90만원을 보내도록 했다.

2심은 “사건본인(자녀)이 성년이 될 때까지 A씨가 월 30만원씩, 김씨가 월 50만원씩 분담하라”며 양육비 관련 부분을 달리 판결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양육비 지급 및 사용 방법까지 주문에 적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먼저 ‘△△△ 또는 ◎◎◎(◇◇◇)’ 명의로 새로운 예금계좌를 개설하고, 이와 연결된 체크카드를 발급받으라고 했다. ‘△△△’와 ‘◎◎◎’는 각 A씨의 한국이름과 영문이름이고 ‘◇◇◇’는 자녀의 이름이다. 또 정부에서 지급하는 양육수당 또는 아동수당 등도 이 계좌로 수령하라고 했다.

2심은 “A씨가 어린이집 비용, 병원비, 학원비, 보험료 등 양육비용을 체크카드를 통해 지출하고, 이 같은 지출내역이 나타난 예금계좌의 거래내역을 매년 분기별로 해당 분기 말일에 김씨에게 알려줘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같은 2심 주문에서의 ‘△△△ 또는 ◎◎◎(◇◇◇)’ 표현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대법원은 “판결 주문은 명확해야 하고 주문 자체로서 내용이 특정될 수 있어야 한다”며 “A씨 명의의 계좌를 개설하되 자녀의 명의를 부기하라는 것인지, A씨와 자녀의 공동명의를 개설하라는 것인지 그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

체크카드를 통해서 양육비를 지출하도록 한 2심 판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대법원은 “A씨는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양육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며 “원심판결과 같이 양육비의 사용 방법을 특정하는 것은 A씨의 재량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결했다.

A씨가 김씨에게 양육비 지출 내역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한 데 대해서도 “양육비의 사용방법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원·피고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김씨에게 예금계좌의 거래내역을 정기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것은 김씨와 A씨 사이에 분쟁을 예방하는 측면보다는 추가적인 분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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