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주목할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 사태 대응을 둘러싼 미국 내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미·중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반드시 중국을 눌러야 한다는 시각이 워싱턴에서 초당적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11월 대선까지 미·중 관계가 나아지기 어려울 것이란 게 워싱턴 조야의 분위기다.
민주당도 방식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은 집권 시 중국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일종의 연합체를 결성해 대중(對中) 외교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사태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됨에 따라 미국이 첨단정보기술 패권 경쟁에서 중국에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인식을 민주당도 공유하고 있다.
둘째, ‘미국 우선주의’ 아래 동맹의 가치를 경시했던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동맹 및 파트너국들과의 다자협력 필요성을 자각하게 됐다는 점이다. 워싱턴 정책 커뮤니티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식의 일방적인 탈세계화·보호무역주의 정책은 맞지 않으며 미국이 중국과 단독으로 무역전쟁을 치르면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자협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코로나 사태 이후 필자가 느끼는 워싱턴의 가장 큰 변화다.
EPN 구상에서도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위해 동맹국과 파트너국의 참여를 적극 요구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대신 중국과의 전면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새 판을 짜려는 의도로 볼 수 있는데, 문제는 한국이 처한 현실이 예전과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강대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으로 균형을 유지해왔지만 현재 미·중 갈등 구도와 국제 정세를 볼 때 그 전략은 쉽게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특히 미·중 관계 개선 여지가 희박한 상황에서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미국의 ‘탈중국’ 글로벌 전략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한국만 독자노선을 택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해 어떻게 동참할지 시급히 고민해야 한다.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구축은 장기적인 프로젝트인 만큼 한국 정부는 초기에 이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한국 기업들이 대응 전략을 마련할 시간을 벌어준 다음 한국 경제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
인도는 중국에서 철수하는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룩셈부르크의 두 배에 달하는 부지를 개발하고 있다. 한국은 자동차,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공급망 다변화 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 중국에서 공장을 철수하진 않되 미국의 리쇼어링(reshoring)에 발맞춰 한국에 추가로 공장을 짓거나 미국 생산라인을 신설·확장해 투자를 늘릴 수 있다. 코로나 방역 경험을 살려 의료장비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한·미·일 협력을 제안하거나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나서 코로나 사태로 위기를 겪는 에너지산업의 새 활로를 모색할 수도 있다.
한국은 이미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2019년 한·일 무역분쟁을 통해 한 국가에 공급망을 과도하게 의존하는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 경험했다. 공급망 다변화가 장기적으로 한국의 정치·경제 전반에 이득이란 점을 인식하면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과제들을 한·미 동맹의 틀에서 잘 수행하기 위해선 워싱턴의 기류 변화에 맞는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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