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이 지난 지금도 '왠지 선수를 뺏긴 듯한' 이 느낌은 정체불명의 감정으로 남아있다. 그는 1시간이 채 안되는 인터뷰 내내 입술만 달싹거리는 듯 했고, 딱히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얼굴엔 누군가에 쫓기는 듯한 초조함까지 비쳤다. 그 불편한 기색을 거스를 수 없어 인터뷰도 서둘러 끝내야 했다.
카페 밖으로 나가 작별인사를 나누려던 찰라, 그제서야 그 초조함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장애인용 승합차 운전석에 앉아 기다리던 그의 아버지와 조우한 것이다. 아버지는 인터뷰가 끝나면 이정은을 데리고 스윙코치를 만나러 갈 참이었다. 이정은은 불편한 차 운전석에 갇혀 줄곧 기다리던 아버지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약속장소에 먼저 와 있었던 나는 바깥 사정을 알지 못했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006/01.22803443.1.jpg)
"일찍 가봐야 해서 미안하다"며 목례를 하는 아버지를 본 순간 웃음기 적은 이정은의 삶이 오버랩됐다. '질문 한 두개는 생략해도 됐을 것'이란 자책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러고보면, 인터뷰에서도 그랬다. "가족은 내가 골프를 하는 이유"라고.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게 그를 성공으로 이끌겠구나, 그 지독한 결기가 거꾸로 그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부녀를 다시 만난 건 1년 쯤 뒤였다. 이정은이 첫 승을 올린 후 열린 한 대회장에서다. 그의 뒤를 많은 팬들이 뒤따랐던 게 가장 큰 변화였다. 환호성을 내지르는 갤러리가 다음 홀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맨 뒤엔 늘 한 명만이 남겨졌다. 아버지였다. 한 팬클럽 회원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타고 있던 그는 100m도 더 떨어진 뒤에서 딸의 경기를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그에게 물었다. "왜 맨 앞에 가서 응원하시지 않고요!"
휠체어를 밀어주던 팬클럽 회원이 대신 말했다. "아이고, 말도 마세요. 나 온 것도 정은이한테 알리지 말라고 난리세요. 나 신경쓰이면 안된다고, 골프는 저 재밌으라고, 저 즐거우라고 쳐야 한다고요."
이 눈물겨운 '원 팀(ONE team)'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 때부터 나는 거의 모든 경기에서 그의 게임을 지켜보려 했다.
이정은은 2018년까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6승을 올렸고 2년 연속 상금왕에 올랐다. 아버지는 늘 이정은보다 100m는 뒤에서 그를 지켜봤다.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다"며 울던 이정은의 등을 떠민 것도 아버지였다. 이정은은 그후 US여자오픈을 제패 메이저챔프가 됐다. 씩씩했던 그는 US오픈 트로피를 꼭 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정은은 2019 LPGA신인상 수락 연설에서 영어 연설을 했다. 3분이 채 안되는 짧은 연설을 위해 그는 꼬박 3개월을 연습했다고 했다. "긴장돼서 죽을 것 같았다"던 연설은 부드러웠고, 흔들리지 않았다. 연설이 끝났을 때, 시상식장의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SNS에는 "LPGA 올해의 스피치다. 아름다운 연설이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또 다른 이는 "영어가 모국어인 이들이 배워야 할 연설"이라고 했다. 집념이 그의 도전을 다시 한 번 해피엔딩으로 이끌었다.
그는 얼마 전 영문 에세이를 LPGA투어 홈페이지에 올렸다. '아직 가지 않은 길(My road less traveled)'. 외로운 결단과 도전으로 가득 찬 그의 삶보다 삶을 바라보는 스물 네살 청년의 처연함이 가슴을 쳤다. 그는 " 쉽고 편한 길은 없다. 가치 있는 길은 늘 그렇다"고 썼다.
그의 미래는 그의 에세이처럼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골프도 그렇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다. 날카로운 결기로 가득찬 자리에 다른 무엇인가가 함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내 대회에 출전한 그가 웃으며 말했다. "골프가 이렇게 재미있는지 미처 몰랐어요."
누구를 위해 골프를 하는가. 이제 그는 새로운 도전 앞에 섰다. 핫식스의 '해피로드', 이제 시작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