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간의 축적 본능이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

입력 2020-06-04 18:10   수정 2020-06-05 02:06

중국 송나라 상인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원숭이들이 반발하자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준다고 했다. 그랬더니 원숭이들이 순응했다. 사람들은 ‘조삼모사(朝三暮四)’란 사자성어로 한 치 앞만 바라본 원숭이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아는 원숭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도토리를 곧장 먹으면 소비재에 불과하지만 다른 원숭이에게 빌려준다면 자본이 된다. 시간이 흘러간 데 따른 보상을 도토리로 받을 수도 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가 쓴 《자본주의 문명의 정치경제》를 관통하는 이야기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문명으로 바라본다. 그는 “자본주의 문명은 경제 정치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끼친다”며 “자본주의는 사회와 함께 변하는 생명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축적’이란 개념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한 기반과 퍼지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문명이 발생하면서 사람들은 수확물을 저장하고 가축을 모았다. 자본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물질을 축적해 시간을 관리하는 개념이 자본이다. 문자 발명이 자본주의의 확산을 도왔다. 사람들은 문자를 활용해 물질뿐 아니라 생각도 저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본주의는 발전해왔다. 저자는 “자본주의에 젖어든 인간군상이 지난 200년 동안 지구촌 전체에 퍼졌다”고 주장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인간성을 해친다고 봤다. 저자는 “이는 학술적 비판이 아니라 도덕적 분노”라고 지적한다. 그는 막스 베버를 인용해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깊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맥락을 설명한다. 저자는 “소유와 경쟁, 개인주의가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며 “이 정신이 축적과 발전이란 인간의 본능을 극대화했다”고 이야기한다.

자본주의는 혁신을 통해 생명을 유지한다. 저자는 조지프 슘페터의 이론을 따온다. 바로 ‘창조적 파괴’다. 그는 “‘개인의 반이성적인 행동이 세계사적으론 이성적 판단이었다’는 헤겔의 ‘이성의 간계’로 창조적 파괴를 설명할 수 있다”며 “20세기 중반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위축시켰어도 기업가들에 의해 다시 확장됐다”고 설명한다.

자본주의가 마냥 완벽한 체제는 아니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숱한 위기 속에서도 진화한 데는 비판을 수용하고 해결책을 찾았기 때문”이라며 “시장 경제의 장점을 활용하면서도 국가와 기업 간의 균형을 잡아왔다”고 역설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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