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4세기 유럽, 페스트 퍼지자 항구부터 막았다

입력 2020-06-04 18:16   수정 2020-06-05 02:1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사회적·대중적 관심이 높아진 전염병을 다각도로 조명한 책들이 많이 출간됐다. 그중에서 마크 해리슨 영국 옥스퍼드대 사학과 교수가 쓴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는 코로나19가 대유행병이 된 이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현상을 과거 역사를 통해 이해하고 성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전염병과 무역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탐구한 연구서다. 상업과 무역의 간선로를 따라 확산한 전염병의 세계사를 서술한다.

출발점은 14세기 몽골과 중국 남부에서 시작돼 대상(隊商)의 육로나 상선의 해로를 통해 서방으로 퍼진 것으로 추정되는 페스트다. 저자에 따르면 이전에도 서구에서 여러 차례 페스트가 발병했지만 공공정책에서 질병과 무역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 첫 번째 사례는 지중해 무역과 더불어 무역 도시로 성장한 이탈리아 도시들에서 처음 등장했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 발령된 ‘피스토야 칙령’은 감염이 의심되는 상인과 상품의 이동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선박과 승객, 화물을 통해 먼 지역의 질병이 전염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대 유럽 국가들은 동방 항로를 통해 전염병이 내습하는 순간 경쟁적으로 각국의 항구로 입항하는 선박을 격리 조치했다.

저자는 전염병이 이끌어낸 국제 공조에도 주목한다. 콜레라와 페스트는 19세기 새로운 국제주의의 물결을 낳았다. 1851년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위생회의가 열렸다. 1907년에는 전염병 정보 취합 및 통지 업무를 담당할 국제공중보건국이 설립됐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전신이다.

하지만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적하듯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19세기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국제 협조의 정신은 사라지고 WHO의 역할은 미미하다. 각국은 저마다 국경 폐쇄, 무역 중단 등 오직 ‘격리’를 통한 방역에만 몰두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의 시대는 새로운 전염병이 간헐적으로 출현할 수밖에 없다”며 “불필요한 혼란과 경제적 피해를 줄이려면 국제 공조를 통해 새로운 방역 방식과 제도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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