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을 이것저것 테스트해봐도 직원이 '뭐 필요한 물건 있으세요?'라고 묻지 않아서 편하다. 그런데 막상 제품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보고 싶을 때는 직원이 없으니 불편하더라."
"어떤 제품이 더 나은지 판단이 안 설 때는 직원의 조언에 기대는 경우가 있지 않느냐. 아무도 나에게 조언을 해주지 않으니 선택하기가 어렵다."
지난 5일 서울 동대문구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의 '아모레스토어' 매장을 찾은 소비자들은 '언택트(비대면) 매장'의 편리함에 신기해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적(?) 불편함도 호소했다.
이날 매장에서 파운데이션을 사려고 다섯 종류나 혼자 발라봤다는 직장인 김모씨(34·여)는 "옆에 직원이 있으면 테스트를 많이 해본 만큼 꼭 사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을 듯 하다"고 했다. 직원이 곁에 붙지 않으니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테스트했다고 언택트 매장 자체엔 만족감을 드러냈다.
다만 결국 구매를 결정할 땐 사람을 불렀다고 했다. 김씨는 "두 가지 제품이 다 마음에 드는데 이 중에서는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면서 "결국 직원에게 무엇이 더 나은지 물어보고 구매했다"고 말했다.
165㎡(50평) 규모의 비대면 매장인 이곳에선 김씨처럼 고민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브랜드인 설화수, 헤라, 프리메라, 구딸파리의 제품 등 1400여개를 직원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테스트해볼 수 있는 '체험형 언택트' 매장이란 점에서 부담없고 편리하다는 평가가 일단 많았다.
특히 증강현실(AR) 기술을 도입한 메이크업 체험 서비스엔 신기해했다. 매장 내 기기에 얼굴을 촬영한 후 화면에서 제품을 선택하면 화면 속 소비자의 얼굴에 메이크업 제품이 적용되는 시스템이다.
매장의 콘셉트에 맞게 제품 진열대는 '화장대' 그 자체였다. 일반 화장품 매장의 조그만 거울과 달리 아모레스토어 매장에는 상반신 전체가 다 보이는 거울이 여러 개 진열돼있다. 조명도 메이크업 숍에서나 쓸법한 은은한 조명이 설치돼있다. 브러쉬, 스펀지와 같은 화장 소품도 종류별로 준비된 '메이크업 숍'을 방불케 했다.
아모레스토어의 특이사항 중 하나는 QR코드를 통해 상품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전 제품은 아니지만 각 브랜드별 대표상품 옆에는 QR코드가 있었다. QR코드를 찍어보니 아모레퍼시픽 공식 온라인쇼핑몰의 해당 상품 상세 페이지로 연결됐다. 향수 제품의 QR코드를 찍어본 권모씨(43·여)는 "직원에게 '이거 얼마에요?'라고 물어보면 꼭 사야 할 것 같아서 불편했는데 QR코드를 통해 가격과 전 성분을 볼 수 있어서 편하다"고 말했다.
비대면 매장이긴 하지만 구매를 결정할 땐 사람의 도움은 여전히 필요했다. 직장인 성모씨(31·여)는 화장대 앞에서 15분간 화장을 하다가 결국 직원을 찾았다. 성씨는 "일반 화장품 매장에서 15분간 화장품을 테스트해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직원이 옆에 없으니 정말 편하게 제품을 써봤다"고 했다.
다만 앞선 김씨의 경우처럼 세밀한 개인적 취향을 결정해야하는 부분에선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성씨는 "화장품은 질감에 맞는 소도구가 있는데 파운데이션을 발라보니 브러쉬와 스펀지 중에 무엇으로 바르는 게 더 좋은지 모르겠어서 결국 직원에게 문의했다"고 설명했다.
향수 QR코드를 찍어본 권씨도 직원을 찾아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향수 지속시간이나 탑노트, 미들노트, 베이스노트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데 해당 페이지에는 그런 정보가 없다"라면서 "직원에게 물어봐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QR코드에 담긴 정보가 소비자의 궁금증을 다 충족시켜주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언택트 매장이라도 소비자들이 결국 직원을 많이 찾을 것이라 예상했던 걸까. 아모레스토어 매장에는 10여명의 직원이 상주해있었다. 고객이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직원들이 따라붙진 않았지만 고객의 요청이 있을 경우 직원들은 일반 매장에서와같이 응대했다. 매장에 상주하는 직원들은 고객에게 맞는 퍼스널 컬러를 제안해주기도 하고, 각종 제품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전문가는 소비자들의 언택트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과도기에 있다고 진단했다. 정연승 한국마케팅관리학회 회장(단국대 경영학과 교수)은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아직 완전한 비대면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라면서 "앞으로 (언택트와 콘택트를 둘 다 필요로 하는) 과도기적인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들마다 성향이 다른데 일부 고객은 직원의 자문이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서 "이러한 소비자들의 니즈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도 완전한 언택트 매장을 바로 도입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완전한 언택트 매장으로 가는 추세가 될 것"이라면서 "아직은 매장에 직원이 없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남아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효율성을 중시하며 직원 부재로 인한 불편함은 감수하는 방향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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