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안전진단을 통과해 주민들이 2017년 재건축조합을 설립했다. 그러나 이듬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 통개발’ 구상을 내놨다가 집값 불안을 이유로 보류하는 바람에 재건축 사업 자체가 올스톱 됐다. 주민들은 아파트 안전대책 수립과 여의도 개발 마스터플랜을 조속히 내놓으라고 청원했지만, 서울시는 꿈쩍도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입주민들이 보는 피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여의도 시범단지는 정기 안전점검 결과, 전기·설비부문이 노후화해 위험이 큰 ‘3종 시설물’로 지정됐다. 아파트 지하엔 6600볼트(V) 고압전기가 흐르는 변전실과 50년 된 온수탱크가 붙어 있어 화재와 폭발 위험이 크다고 한다. 연간 6000건씩 안전보수를 해도 천장 균열과 누수, 외벽 손상 등으로 인해 주거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이 아파트뿐 아니라 서울 잠실동 주공5단지,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40~50년 된 노후 아파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의 재건축 불허로 입주민들은 사유재산권을 침해받고 있기도 하다. 공공 시설물도 아니고 개인 주택인 아파트가 낡아 위험해지면 소유주들은 리모델링을 하든, 재건축을 하든 고쳐서 살 권리가 있다. 이 같은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일방적으로 막는 것은 재산권을 존중하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물론 우리 헌법은 공공복리 등을 위해 재산권 행사를 일부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시범아파트처럼 ‘지금은 집값 불안 때문에 안 되니 안정될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라’는 식의 제한은 과도하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큰 틀에서 보면 주택가격 안정도, 여의도 종합개발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가치 때문에 개인의 의사에 반해 재산권을 희생시키는 것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주민들이 낡고 균열이 생긴 집에서 기약도 없이 불안하게 살아가야 한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재건축 규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각에선 박 시장이 여의도 종합개발 마스터플랜을 자신의 대선 공약으로 내놓기 위해 시범아파트 등의 재건축 허가를 미루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시민 안전을 볼모로 삼았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뒷말이 나온다는 것은 주민들이 서울시의 불허 이유를 전혀 납득 못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조속히 합리적 대안을 내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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