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가 있지만, 인수 조건을 원점에서 재검토 해달라고 9일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 등에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현산은 이날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다"며 "인수 상황 재점검 및 인수조건 재협의 등을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성공적으로 종결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지난달 29일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금호산업은 HDC현산 컨소시엄에 "6월 27일까지 인수 의지가 있는지 여부를 밝히지 않으면 계약을 연장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이날 현산이 인수 의지를 재확인하되 원점 재검토를 요청한 것은 이에 대한 답변이다.
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의 인수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의 전망이 크게 달라지고 정부의 지원 등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에도 큰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에, 인수 방법과 시기 등에 관해서 모든 조건을 처음부터 다시 협상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현산 관계자는 "지금까지 인수를 완전히 포기한 채로 계약금을 돌려 받기 위해 침묵했던 것이 아니다"며 "다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손실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조건을 제시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나, 5개월새 부채 4.5조원 증가"
현산은 보도자료를 통해 "인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고 인수 가치를 훼손하는 여러 상황에 대한 재점검 및 재협의를 위해 계약상 롱스탑 데이트(잠정적 거래종결 기한)을 연장하는 데 공감한다"고 밝혔다.
현산은 "항공업 진출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참여했으며, 현재 러시아를 제외한 중국 등 모든 국가에서 기업결합 승인을 받았고 러시아로부터의 승인도 조속히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노력을 다 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당초 세웠던 인수자금 조달계획에 따라 유상증자, 회사채 등 발행과 금융기관 대출 등을 순차적으로 실행하는 등 인수자금 조달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수 조건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현산은 "인수 계약 체결일 이후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인수 가치를 현저히 훼손하는 여러 상황들이 명백히 발생되고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계약일로부터) 불과 5개월도 지나지 않았지만 아시아나항공은 계약 체결 당시와 비교해 작년 말 기준 2조8000억원의 부채가 추가로 인식되고, 1조7000억원 추가 차입으로 부채가 무려 4조5000억원 증가했다"고 현산은 적었다.
작년 반기말과 비교해 지난 1분기말 부채비율도 1만6126% 급증했고, 자본총계는 1조772억원 감소해 자본잠식이 매우 심각하다고 지목했다. 아울러 지난 3월 공시된 2019년 감사보고서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외부감사인이 이 회사 내부회계 관리제도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표명했다며 "이번 계약의 기준인 재무제표의 신뢰성 또한 의심스러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현산, 긴급자금 1.7조원 지원 절차에 불만 표시
그동안 아시아나항공 측과 벌여온 신경전에 대해서도 밝혔다. 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4월21일 (항공업 지원을 위한) 긴급자금 1조7000억원 추가 차입 등을 통보만 하고 사전 동의 없이 다음날 이사회에서 이를 승인했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어 같은 달 24일 "법률적 리스크가 상당한 부실계열사에 대한 1400억원 지원도 통보했다"고 덧붙였다. "HDC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의 명시적인 부동의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나항공은 추가자금 차입 및 부실계열사에 대한 지금지원 등을 결정하고 관련 정관 변경, 임시주주총회 개최 등 후속 절차를 강행하고 있다"고 적었다.
채권단에 바라는 바에 대해서도 간접적인 형태로 희망사항을 밝혔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아야 하지만 자본 구조에 대한 영향은 가급적 최소화해 달라는 메시지다.
현산은 "향후 아시아나항공이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영업실적 하락 등을 극복하고 산업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지원책과 계약 체결 당시의 본원가치를 회복하는 것을 전제로 계속기업으로 존속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더불어 "향후 아시아나항공의 자본구조에 변동이 있는 경우에 대한 충분한 대책 마련 등 인수 계약 관련 중대한 상황들에 대한 합리적 재점검과 인수 조건에 대한 원점에서의 재협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인수합병(M&A)에 그룹의 사활이 걸려 있는 만큼, 현산은 모든 이해관계자와 주주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채권단, 다양한 '당근' 검토
현산과 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작년 12월27일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30.77%를 3228억원에 사고, 2조1771억원 가량의 유상증자를 약속하는 조건으로 아시아나항공 경영권을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당시 계약에 따르면 양측은 6개월 후인 오는 27일까지 거래를 종결하기로 약속했다. 단 해외 기업결한승인심사 등 다양한 선결 조건에 따라 합리적인 기간만큼 종결 시한을 늦출 수 있게 돼 있다. 최장 연장 시한은 올해 12월27일까지다.
그런데 지난달 29일 채권단은 내용증명을 보내 "인수 의지를 밝히지 않은 채 무조건 기한을 연장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랐다. 인수 의지를 밝히든지, 아니면 '플랜B'를 가동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낸 셈이다.
현산이 이같은 요청에 화답해 이날 인수 의사를 공개적으로 다시 표시한 만큼, 공은 채권단으로 넘어 왔다. 이에 따라 이제 채권단이 제공할 수 있는 '당근'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채권단 내에서는 금호산업 보유 주식의 인수 시기 및 가격 등의 변경, 항공업 지원 차원에서 결정된 영구채의 전환조건 완화, 유상증자 시 단가 변경 등의 방법을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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