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5두41937 판결 : 증여세부과처분취소>
◆ 사실관계
A(원고)는 전업주부다. A의 배우자인 B는 회계법인과 법률사무소 등에서 약 40년간 근무해 온 사람이다. B는 2006년 3월9일부터 2008년 10월31일까지 총 35회에 걸쳐 자신의 급여 합계 약 13억 4000만원(이하 ‘이 사건 금전’이라 한다)을 자기앞수표 입금이나 계좌이체의 방법으로 A 명의의 은행 계좌에 입금했다.
A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자금 약 29억 7100만원과 B로부터 이체받은 자금을 합해 펀드 투자 및 정기적금에 적립해 운용한 후 다시 자기 명의의 계좌에 입금했다. 그러자 피고 마포세무서장(이하 ‘피고’라 한다)은 B가 A에게 예금을 이체한 것을 증여로 추정하여 A에게 증여세를 부과했다.
◆ 소송경과
A는 이 사건 금전은 증여가 아니라 투자 목적으로 받은 것이라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증여세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원심은 피고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이 사건 금전이 A에게 증여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전제 아래, A 명의의 계좌에 입금된 돈이 증여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이뤄졌다는 점에 대한 A의 증명이 부족하다고 봤다.
◆ 대상판결 요지
[1] 조세부과처분 취소소송의 구체적인 소송 과정에서 경험칙에 비춰 과세요건사실이 추정되는 사실이 밝혀진 경우에는 과세처분의 위법성을 다투는 납세의무자가 문제된 사실이 경험칙을 적용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점 등을 증명해야 한다. 혹은 이 같은 경험칙의 적용을 배제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경험칙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엔 원칙대로 과세관청이 과세요건사실에 대해 증명해야 한다.
[2] 부부 사이에서 일방 배우자 명의의 예금이 인출돼 배우자 명의의 예금계좌로 입금되는 경우에는 증여 외에도 단순한 공동생활의 편의, 일방 배우자 자금의 위탁 관리, 가족을 위한 생활비 지급 등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예금의 인출 및 입금 사실이 밝혀졌다는 사정 만으론 경험칙에 비춰 해당 예금이 타방 배우자에게 증여됐다는 과세요건사실이 추정된다고 할 수 없다.
◆ 해설
1. 부부간 특유재산의 추정과 그 번복
부부의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특유재산으로 추정된다(민법 제830조 제1항). 따라서 혼인 중 부부 일방 명의의 은행 계좌로 입금된 금전은 그 일방 배우자의 특유재산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런 추정은 반증에 의해 뒤집을 수 있다. 부부의 일방이 그 명의로 재산을 취득할 때 다른 일방이 그 취득자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했다면, 특유재산의 추정이 번복돼 그 다른 일방의 소유이거나 부부가 그 재산을 공유하는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이 경우엔 그 재산 또는 지분에 관해 명의신탁관계가 성립한 것으로 보는 것이 판례의 주류적인 태도다(대법원 1992. 12. 11. 선고 92다21982 판결 등).
예컨대 부부의 일방이 혼인 중 단독 명의로 취득한 부동산은 그 명의자의 특유재산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다른 일방이 실질적으로 당해 재산의 대가를 부담해 취득했음을 증명하면 추정은 번복돼, 그 다른 일방이 실질적인 소유자로서 명의신탁한 것으로 인정된다(대법원 1998. 12. 22. 선고 98두15177 판결).
이런 주류적 판례에 따른다면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금원을 이체받아 자기 명의로 예금반환채권을 취득한 경우, 특유재산의 추정은 번복돼 실질적으로는 남편이 아내에게 그 예금을 명의신탁한 것으로 보게 될 것이다. 즉 이 사건에서도 A 명의의 예금을 A의 특유재산으로 추정해 B로부터의 증여로 추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세관청인 피고가 B로부터 A로의 금전이체가 증여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2. 금전거래에 관한 증여추정의 법리
배우자나 직계존비속 간에 부동산과 같은 특정물을 양도하는 것은 통상 증여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에서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에게 양도한 재산은 양도자가 그 재산을 양도한 때에 그 재산의 가액을 배우자 등이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하는 규정을 둔 것이다(제44조).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현금이 아닌 재산을 양도한 경우에 적용되는 규정이다. 배우자나 직계존비속 간에 쉽게 오고갈 수 있는 현금의 경우에는 그것이 반환을 전제로 한 것인지 증여한 것인지 자금거래의 성격을 단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상증세법에서도 현금에 대해서는 증여추정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런데 판례는 직계존비속 간의 금전거래에 있어서 과세관청의 증명책임을 완화시키려는 취지에서 증여추정의 법리를 판시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증여추정의 법리는 주로 부모가 자식이나 사위 또는 며느리에 예금을 이체했을 때 적용되고, 부부 간에는 적용하지 않는 것이 판례의 대체적인 태도다.
직계존비속 간에는 일반적으로 증여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증여추정의 법리를 적용하지만, 부부 간에는 증여 이외의 다양한 이유로 예금 이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증여추정의 법리를 동일하게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대상 판결도 “증여 외에도 단순한 공동생활의 편의, 일방 배우자 자금의 위탁 관리, 가족을 위한 생활비 지급 등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판시함으로써 부부관계의 특수성을 적절히 지적하고 있다.
부부는 생활공동체이자 경제공동체로서 명의신탁이 허용되고 다양한 이유로 금전거래가 빈번하게 이뤄진다. 따라서 부부 간의 예금이체의 성격을 어떤 하나로 단정하거나 추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적어도 부부간 현금 거래에 대해서는 증여추정의 법리를 적용하지 않고 일반 입증책임의 원칙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즉 부부 간 금전거래의 경우에는 거의 증여라고 볼 수 있는 경험칙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원칙으로 돌아가 증여라는 과세요건사실에 관해 과세관청이 증명해야 한다. 대상판결의 결론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법학박사)
- 고려대 법과대학 졸업
- 고려대 법학석사(민법-친족상속법) 전공
- 고려대 법학박사(민법-친족상속법)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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