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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때 본격적으로 상업에 나선 그는 초기 10년간 숱한 고초를 겪었다. 그 쓰라린 과정을 통해 국제 무역시장의 원리와 신용의 중요성을 몸으로 터득했다. 사람의 됨됨이를 면밀히 살피는 신중함도 배웠다. 홍경래가 난을 일으키기 전 그의 밑에 위장취업했을 때 “물상 객주집 서기로는 그릇이 넘친다”며 내보내 반란에 휘말리는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가 중국 상권까지 뒤흔들 정도로 거부가 될 기회는 42세 때 찾아왔다. 사신단의 일원으로 인삼을 싣고 베이징으로 간 그는 중국 상인들이 인삼 값을 낮추려고 불매동맹을 펼치자, 인삼을 불태우는 ‘역발상 전략’으로 맞서 몇 배나 비싼 값에 팔고 인삼 무역의 글로벌 승자가 됐다. 소설에서는 스님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예전 사행길에 동행했던 추사 김정희의 조언 덕분이었다.
그는 재산이 늘어날 때마다 스스로 과욕을 경계했다. 그 증표로 ‘계영배(戒盈杯·넘침을 경계하는 잔)’를 곁에 두고 마음을 다잡았다. 계영배는 술이 70% 이상 차오르면 밑바닥의 작은 구멍으로 모두 새어나가게 만든 잔이다. 컴퓨터단층촬영으로 들여다보면 잔 안에 둥근 기둥이 있고 거기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과학적으로는 ‘사이펀(siphon)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사이펀은 공기의 압력 차이로 액체를 이동시키는 원통형 막대를 말한다. 빈 컵에 구멍을 뚫고 구부러진 빨대를 끼운 뒤 물을 채워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어항의 물을 가는 고무관이나 S자형 배수관도 같은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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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는 이와 비슷한 ‘피타고라스의 컵’이 있다.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만들었다. 물이 부족한 그의 고향 사모스 섬에서 물과 와인을 아끼기 위해 발명했다고 한다. 이 컵에 일정 수위 이상 물을 부으면 밑으로 다 새어버린다. 요즘은 피타고라스 컵 원리를 활용한 와인 잔과 커피 잔도 나와 있다. 화학 실험기구인 ‘탄탈로스의 접시’ 또한 이런 원리로 고안됐다.
몇 해 전 국립중앙과학관의 ‘고대 그리스 과학기술 특별전’에서 피타고라스의 컵을 처음 보았다. 계영배는 여러 차례 공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4개)과 개인 소장(1개) 등 5개가 전해져 온다. 계영배를 고안한 사람은 19세기 실학자 하백원과 도공 우명옥이지만, 그 유래는 기원전 7세기 중국 제나라 환공의 ‘기기(器·기울어지는 그릇)’에서 찾을 수 있다. 비어 있으면 기울고, 절반쯤 차면 바르게 놓이고, 가득 차면 엎어지는 그릇이다.
이 신기한 그릇을 본 공자는 “가득 채우고도 기울지 않는 것은 없다”며 무릎을 쳤다. 제자가 ‘채우고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은 듯 지키고, 큰 공을 세우고도 겸양으로 지키고, 용맹하면서도 낮춤으로 지키고, 천하를 가질 정도로 부유하면서도 겸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일렀다.
‘소년 노비’의 설움을 딛고 조선 최고의 거상(巨商)이 된 임상옥에게 과유불급과 상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 것이 곧 계영배의 원리였다. 이는 재물과 이익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나라에 기근이 닥칠 때마다 사재를 털어 사람들을 구했다. 그 공로로 종3품 벼슬까지 올랐으나 곧 물러나 20년간 빈민을 구제하며 채마밭을 가꾸는 것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의 호 ‘가포(稼圃)’는 채마밭 가꾸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시문집 《적중일기(寂中日記)》와 《가포집(稼圃集)》을 남겼으니, 실물경제와 인문정신의 꽃을 조화롭게 피운 일생이었다. 계영배에 새겨진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죽을 때까지 너와 함께하길 원한다’는 글귀에 그의 인생이 압축돼 있다. 예나 지금이나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권력도 인생도 마찬가지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북핵 6자회담 美 대표, 계영배 얘기로 北 설득
계영배는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 협상 테이블에서도 숨은 역할을 했다.
2007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에서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이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 등 무리한 요구를 계속했다.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주한 미국대사 때 선물로 받은 계영배 얘기를 꺼냈다. 너무 욕심을 부리면 판이 깨지고 아무것도 건질 수 없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그동안의 만남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해 회담 무용론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결국 북한은 더 이상의 군사적 요구를 철회하고 100만t 수준의 에너지 원조에 합의하는 것으로 물러섰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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