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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원 규모 미국의 15개 최고급 호텔 인수계약을 둘러싼 미래에셋 그룹과 중국 안방보험(현 다자보험)의 소송에 덩샤오핑의 손녀 덩줘루이(鄧卓芮)를 비롯한 중국 권력 계파가 변수로 등장했다. 덩줘루이는 중국에 수감된 우샤오후이(吳小暉) 전 안방보험 회장의 세 번째 부인이다. 미래에셋이 계약을 파기한 주된 이유가 된 호텔을 둘러싼 분쟁의 배후에 이들 중국 인사들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미래에셋 그룹은 지난해 9월 안방보험이 소유한 미국 뉴욕 JW메리어트에식스하우스 등 최고급 호텔과 리조트 15곳을 7조원에 인수하기로 계약했으나 지난 4월 돌연 계약 이행 거부를 선언했다. 안방보험은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미래에셋의 단순변심"이라며 총 공세를 펼쳤다. 이에 맞선 미래에셋은 안방보험에 맞서 이번 계약 철회는 단순변심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반격에 나섰다.
◆"코로나19 때문에 호텔 포기한 것 아니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미래에셋은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제출한 반소장을 통해 "계약 이행이 불가능한 핵심적인 이유는 우 전 회장이 체포되기 한 달 전인 2017년 작성한 합의문(DRAA 문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당초 알려진 미국 국적 개인이 위조문서로 안방보험 호텔 일부의 등기를 이전한 문제와는 별개의 사건이다.
우 전 회장과 공동 창업자 천샤오루(陳小魯)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문건에는 안방보험이 미국내 상표권과 관련해 900억달러(약 107조원)의 합의금을 미국의 한 법인에 지급하기로 하고 담보물로 미래에셋과의 거래대상을 포함한 20개 호텔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겨 있다.
미래에셋은 이 합의문이 발견된 후 미국 금융사들이 대출을 포기하고 권원보험사들 역시 보험 인수를 거부한 탓에 계약을 이행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안방보험은 입장문을 통해 "상표권 합의금으로 900억달러를 지급한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얘기며 권원이 없는 자들이 만들어낸 허위 문서"라고 일축했다. 더 나아가 안방보험은 "코로나19 사태로 호텔산업이 어려워지자 미래에셋이 계약 해지를 위해 DRAA문건을 빌미로 삼았다"며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에셋은 잔금을 지불하고 호텔을 인수하라"고 주장했다.
반면 미래에셋 측은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관련 분쟁 때문에 대출과 보험 가입이 안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계약을 더 이상 이행할 수 없으니 계약금 7000억원을 반환하라"고 맞섰다. 뿐만 아니라 안방보험의 합의 문건이 발견된 시점은 미국 내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전이었다고 강조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지난 2월 대출 주관사 골드만삭스의 법률검토 과정에서 이 문건 때문에 호텔과 관련된 80여 건의 소송이 법원에 계류중이라는 사실도 추가로 발견됐다"고 말했다.
◆미래와 안방의 소송에 등장한 제3자
일견 터무니없어 보이는 합의 문건과 관련된 새로운 의혹도 제기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이날 '미스테리한 문서가 안방보험의 호텔 매각을 저지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DRAA문건은 단순 위조 문건이 아니고 중국에 수감된 우 전 안방 회장 일파의 재산 은닉 시도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매매대상 호텔과 관련된 분쟁의 배후에 중국 권력층이 연루됐다면 미래에셋이 호텔 취득을 장담할 수 없는 사유가 되며, 안방과의 소송에는 더 없는 호재다.
합의 문건은 안방보험이 중국 정부나 금융감독당국에 압류(seized)될 경우 무조건적으로 미국의 4개 주체가 자산과 관련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동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누군가가 안방보험 자산을 빼돌리려고 준비했다는 얘기다. 다만 FT는 "문건에 나온 미국의 4개 주체는 델라웨어의 페이퍼 컴퍼니로 밝혀졌으나 실 소유주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DRAA문건과 관련된 분쟁의 배후는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면서도 "중국인들이 배후에 있다면 미래에셋이 호텔을 인수하는 데 더욱 중대한 하자가 된다"고 전했다.
안방보험의 몰락이 중국내 권력 다툼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덩샤오핑-장쩌민으로 내려오는 태자당인맥을 반(反)부패 명목으로 숙청하면서 우 전 회장도 희생됐다는 얘기는 중국 안팎에서 비밀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미래에셋이 계약을 지켰으면 낭패를 봤을 것"이라며 "자산을 빨리 팔려는 중국 정부와 중간에서 재산을 빼돌리려는 미국 내 중국인들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뻔 했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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