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국민연금 개혁 사실상 포기

입력 2020-06-15 17:43   수정 2020-10-08 16:24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5일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정부가 추가로 내놓을 안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개혁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정부가 더 이상 지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 내 국민연금 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장관은 이날 세종시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지난 국회에 전달한 세 가지 개선안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사회적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마련한 것으로 정부가 다시 특별히 만들 안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세 가지 안 중 현행 유지 안을 제외하고 두 가지 안을 살펴 (정부) 단일안을 마련하는 것을 토론하고 있다”고 했으나, 이번에 자신의 발언을 뒤집었다.

박 장관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와 관련해서도 “대선에서 주요 아젠다로 오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역시 “총선이 끝나는 대로 의원들을 설득해 21대 국회에서 처리되도록 하겠다”고 했던 기존 입장과 상반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사회적 협의기구 구성을 통한 국민연금 개혁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2년 가까운 진통 끝에 지난해 8월 경사노위가 세 가지 개혁안을 마련했지만 야당이 “책임 있는 정부안 하나를 가져오라”고 요구해 지난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박 장관이 후퇴된 의견을 내놓은 배경에는 청와대와 국회의 부정적 기류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총선 압승으로 ‘슈퍼 여당’이 됐지만 정치적 부담이 있는 국민연금 개혁은 말도 꺼내기 힘든 분위기”라고 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국민연금 개혁엔 애초 관심없던 文정부…박능후 결국 두 손 들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5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정부의 단일안 제출을 포기한다고 밝히면서 관련 논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3개 후보안을 냈던 지난해 8월로 되돌아가게 됐다. 박 장관은 여기에 더해 “다음 대선에서 핵심 의제로 부각돼 해결책을 찾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음 대선 이후로 국민연금 개혁이 최소 2년 더 미뤄지게 된 것이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 국민연금 기금은 2057년 바닥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연금 전문가는 “2057년 고갈된다는 추계도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악영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며 “파국이 예상보다 빨리 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10개월 전으로 돌아간 개혁안

경사노위에서 작년 8월 내놓은 국민연금 개혁 후보안은 세 가지다. 급여의 9%(근로자 부담 4.5%)인 보험료율을 2031년까지 12%로 단계적으로 높이되 2028년 40%를 목표로 떨어지고 있는 소득대체율(현재 44.5%)은 45%로 유지하는 안이 다수안이었다. 소득대체율은 그대로 두고 보험료율만 10%로 올리는 안과 현행 유지안도 있었다. 세 가지 안을 받은 정부는 어느 것에도 무게를 싣지 않고 그대로 국회로 제출했다. 박 장관은 당시 “정부는 국회 논의가 시작되면 세 가지 안의 장단점을 설명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공무원연금 등 사회보험 개혁과 관련해 정부가 복수의 안을 국회에 넘긴 전례는 없었다. 야당을 중심으로 국회에서 “정부가 연금 개혁과 관련된 정치적 부담을 국회에 떠넘기려 한다”는 반발이 터져 나온 이유다. 비판에 부딪힌 박 장관은 작년 10월 기존 방침을 뒤집고 정부 단일안을 제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경사노위 다수안이 정부 단일안으로 제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이날 박 장관 발언으로 국민연금 개혁은 경사노위 안이 나오던 지난해 8월 상황으로 되돌아갔다. “단일안을 제출하겠다”던 박 장관의 작년 10월 발언이 돌발 발언에 가까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복지부 내부 및 여당과 조율한 결과가 아니라 개인의 소신이 작용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적 부담에 발목 잡혀

문재인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은 2018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복지부의 연금 개혁안에 퇴짜를 놓으면서 난항에 빠졌다.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는 약 1년간의 논의를 거쳐 보험료율을 11~13%까지 즉시 올리는 안 등을 포함한 개편안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하지만 개편안이 사전에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청와대는 “국민 부담을 늘리지 않겠다”며 바로 물러섰다.

이에 복지부는 현행 제도 유지를 포함해 4개 안을 2018년 12월 구성된 경사노위 연금특위에 넘겼다.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됐던 정부 위원회와 달리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이익단체가 대거 들어온 탓에 책임 있는 단일안이 나오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결국 경사노위는 9개월의 시간을 쓰고도 기존 4개 안을 3개로 줄이는 데 그쳤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보험료 인상 없는 소득대체율 50% 인상’이었다. 장기적인 재정안정성을 담보할 연금 개혁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당시 유시민 복지부 장관의 주도로 연금 개혁을 실행했다가 지지율이 떨어진 기억이 있다”며 “어떤 정권이든 연금 개혁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연금 개혁만큼은 정치 쟁점화하지 않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 박 장관은 ‘복지부 몸집 불리기’로 논란이 된 정부 조직개편안에 대해 “국립보건원의 만성병 및 보건산업 연구 기능을 감안할 때 복지부 산하로 들어오는 것이 합리적이었다”며 “국민들의 오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원격의료와 관련해서는 “기술 진보로 비대면 의료를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피하다”며 “의원급 병원을 중심으로 시행해 일선 의사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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