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최근 신문, TV, 인터넷 등에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란 단어를 접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마이크로바이오타(microbiota)와 게놈(genome)의 합성어다. 사람, 동물, 식물, 흙, 바다, 호수, 암벽, 대기 등 모든 환경에 사는 미생물과 그것의 유전정보를 뜻한다. 이 중 가장 활발히 연구되는 분야가 인체에 살고 있는 미생물이다. 사람의 장과 피부에는 미생물이 산다. 장내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인체 미생물은 제2의 유전자
미생물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생물’을 말한다. 미생물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지구상에 거의 없다. 현재 과학기술로 배양이 가능한 미생물은 지구에 존재하는 미생물 중 1% 미만이다. 매년 500~1000종의 새로운 미생물이 발견된다. 우리는 흔히 미생물 하면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많은 미생물이 우리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김치, 젓갈, 치즈, 요구르트는 모두 미생물의 발효에 의해 만들어진다. 항생제나 비타민을 생산할 때 미생물이 이용된다. 폐수를 처리하는 데도 필수다.
우리 몸에는 100조 개 이상의 미생물이 산다. 대부분은 소장과 대장에 살고 있다. 인간은 10%의 인체 세포와 90%의 미생물로 이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최근 장내 미생물이 여러 질환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들이 보고되면서 장내 미생물은 기억 속에서 잊힌 기관 또는 제2의 유전자로 불린다. 장내 미생물은 알레르기, 아토피, 비만, 비염, 장염 등 각종 대사·면역질환뿐 아니라 우울증, 자폐증, 치매 등 뇌질환과 관련이 있다. 장내 미생물이 질병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도가 커지는 이유다.
암, 대사질환 등 치료제 개발
인체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90년대 추진된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인간의 모든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밝혀지면 질환과 관련된 난제들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유전자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생명 현상 전반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인체 미생물에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생물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인체와 미생물 간 상호작용을 규명하는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2014년 세계경제포럼은 인체 마이크로바이옴 기반의 치료제를 세계 10대 미래 기술로 선정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마이크로바이옴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천랩, 고바이오랩, 지놈앤컴퍼니 등 국내 기업들도 마이크로바이옴 기술을 이용해 대사질환, 감염병, 암, 피부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병원균의 하나인 클로스트리듐 디피실에 감염돼 발병하는 대장염 치료제는 개발이 상당히 진척됐다. 궤양성 대장염, 크론병 등 희귀질환 치료제는 물론 항암제 연구도 활발하다. 환자에게 처방하기 위해서는 마이크로바이옴과 질환의 상호작용을 명확히 입증해야 하고 살아 있는 생명체인 미생물이 약물에 쓰이므로 품질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실물자원 확보해야
장내 미생물은 인종과 문화에 따라 다르다. 질환별 마이크로바이옴을 연구하려면 환자에 대한 대조군이 필요하므로 일반인의 장내 미생물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실물자원을 확보하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을 받아 한국인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은행을 구축하고 있다. 생애주기에 따른 건강한 한국인 800명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유전자를 분석하고 장내 미생물을 확보하는 게 이 사업의 목표다. 산학연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인프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현재까지 확보된 장내 미생물 중 일부는 연구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산업은 치료제뿐 아니라 화장품, 식품, 항생제, 환경 등 적용 가능한 범위가 넓은 분야다.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닌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정부가 육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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