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1번째 부동산대책을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반신반의다. ‘두더지 잡기’ 식으로 집값 상승세가 두드러지는 지역을 규제할 때마다 주변 지역이 오르는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유동성과 수급불안을 해결할 근본적 처방 없이 규제의 범위만 확대하는 정책은 미봉책에 그칠 우려가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수도권 대부분, 전국 4분의 1 '규제지역'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이 17일 발표한 ‘6·17 대책’은 문재인정부의 21번째 부동산 정책이다. 2017년 ‘6·19 대책’을 시작으로 1.7개월마다 한 차례씩 규제 또는 공급책을 내놓은 셈이다.
정부는 집값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지역이 나타날 때마다 조정대상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 지정 등의 규제를 가하는 방법으로 안정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규제로 묶으면 주변 비(非)규제지역이 오르는 ‘풍선효과’가 연이어 나타났다. 그럴수록 규제지역은 점점 확대되고 강도도 높아지는 패턴을 반복했다.
이번 대책을 통해 경기 일부 지역을 제외한 수도권 전역과 대전, 충북 청주 등이 조정대상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전국의 규제지역은 65곳으로 늘었다. 수도권의 경우 서울 25개 구를 포함한 시·군·구 72곳 가운데 58곳이 해당된다. 사실상 수도권 대부분 지역이 부동산 규제를 받고 있는 셈이다.
규제지역이 확대되면서, 참여정부 시절처럼 전국 대부분 지역이 규제를 받을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당시엔 조정대상지역 개념이 없어 투기과열지구로 묶어 관리했다. 2002년 9월만 해도 투기과열지구는 서울 전역에 그쳤지만 전국적으로 집값이 오르면서 경기 전역과 부산, 인천, 대구 등으로 점차 확대됐다. 2004년 7월엔 투기과열지구가 전국 지자체의 절반가량인 105곳까지 늘었다.
◆3년째 ‘두더지 잡기’…이번엔?
계속되는 부동산 정책에 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대부분의 규제지역은 지정 이후 집값 상승세가 잠시 주춤했을 뿐 꾸준히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이던 2017년 6·19 대책은 대출을 조이고 서울의 분양권시장을 막은 게 골자였다. 당시 정부는 ‘핀 포인트 대책’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집값은 거꾸로 움직였다. 결국 역대 가장 강력한 대책으로 꼽히는 ‘8·2 대책’이 곧바로 나왔다. 서울 전역의 투기과열지구 지정과 정비사업, 대출, 세제 규제 등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규제책이다. 이후 나온 모든 대책이 8·2 대책을 근간으로 했다. 서울 모든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묶였고 강남구 등 11개구는 투기지역으로 지정돼 초고강도 규제를 받았다. 이들 지역의 대출 한도는 40%로 줄었다.
2018년엔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와 ‘9·13 대책’이 나왔다. 종합부동산세가 사실상 부활했고 임대사업자 혜택이 축소됐다. 하지만 집값은 잠시만 주춤했을 뿐 다시 반등했다. 결국 정부는 2018년 12월과 지난해 5월 두 차례에 걸쳐 3기 신도시 카드까지 꺼냈다. 문재인정부의 첫 대량 공급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집값 안정세는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지난해 여름을 전후해 곳곳에서 다시 최고가 행진이 시작됐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부활시키고 ‘12·16 대책’을 통해 대출을 더욱 조였다. 12·16대책에서는 투기과열지구에서 15억 이상의 주택에는 대출을 금지하는 등 대출을 막는 초강수를 뒀다. 그랬더니 이번엔 상한제와 거리가 먼 초·중기 단계의 서울 정비사업이나 수도권 지역에서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지방 광역시와 중소도시까지 집값이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6·17 대책도 머지않아 보완책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어차피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재개발·재건축을 강력하게 억제한 상태에서 수급불안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 없이 규제 범위만 확대하면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공공재개발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규제가 나올 때 시장이 안정되는 건 ‘정체효과’에 불과하다”며 “나중에 더 큰 폭으로 집값이 오를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공급 측면에서 확실한 처방을 내놓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계속되는 부동산 정책에 국토부 내부에서도 피로도가 쌓이고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부 공무원들 사이에선 주택 관련 부서가 기피 부서로 꼽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량이 많은 데다 민감한 현안을 늘 관리해야 하는 입장인 탓이다. 한 국토부 관계자는 “정책의 성패에 대한 관심이 높고 반응이 시시각각으로 나오다 보니 업무 피로도가 높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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