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정부가 17일 북한의 군사도발 위협 및 대남 비방·비난에 강하게 맞대응하면서 남북한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 정부의 강공모드 전환은 북한이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리 측 예산이 투입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하는 무력시위를 벌인 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전달한 평화 메시지를 “역스럽다(역겹다)”고 폄하하는 등 그동안 남북이 쌓아온 최소한의 신뢰를 북한이 저버렸다는 인식이다.
북한 군부가 이날 구체적인 계획을 밝힌 금강산 지구, 개성공단 재무장이 실행에 옮겨질 경우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며 남북관계는 ‘전쟁 위기설’까지 돌았던 3년 전으로 돌아갈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이틀 연속 강경대응한 靑
청와대가 이날 “몰상식한 행위”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틀 연속 북한에 강경대응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 같은 대응 이유로는 먼저 북한이 4·27 판문점선언을 무력화하는 직접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그간 북한의 ‘말’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군사적 ‘행동’에는 단호한 입장을 유지했다. 북한이 2017년 잇달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했을 때 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엄중히 규탄하고 분노한다”고 밝혔다. 4·27 선언의 상징과 같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철거를 중대한 도발로 간주한 것이란 해석이다.
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입에 담기 힘든 비난을 쏟아낸 것도 강경대응의 배경으로 꼽힌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이날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문 대통령의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발언과 6·15선언 20주년 행사 영상 메시지를 두고 “자기변명과 책임 회피, 뿌리 깊은 사대주의로 점철됐다”고 평가절하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 임동원 전 국정원장 등 원로들과의 오찬 회동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고 이후에 전개되는 과정을 보니 굉장히 실망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 특사파견 제안까지 폭로
김여정 밑에서 대남사업 업무를 맡고 있는 장금철 북한 통일전선부장도 이날 담화를 내고 “지금까지 북남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은 일장춘몽으로 여기면 그만”이라며 “남측 당국과 더는 마주앉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장금철은 전날 청와대가 연락사무소 폭파와 관련해 유감을 나타낸 것에 대해 “지난 시기 오랫동안 써먹던 아주 낡은 수법대로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가소로운 입질까지 해대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북한의 대남정책 라인들이 이날 일제히 대남 비방·비난 메시지를 쏟아낸 것이다. 북한은 또 이날 남측이 1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나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특사로 파견하겠다는 제안을 했고, 김여정이 이를 거절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밝혔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대남 비방·비난은 내부에 누적된 불만을 외부로 표출하기 위한 것”이라며 “적어도 한두 달은 이런 남북 간 강 대 강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불바다’ 다시 꺼낸 북
북한군은 전날에 이어 군사적 압박을 가했다. 북한 관영매체는 이날 ‘서울 불바다’설까지 거론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대변인 발표문을 통해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단,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에 군부대를 재주둔시키고 서해상 군사훈련도 부활시키겠다고 예고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개성과 금강산에 연대급 규모(2000여 명)의 포병 및 기갑부대가 전진배치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9·19 군사합의 파기를 공식화한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논평에서 “입 건사를 잘못하면 그에 상응해 잊혀가던 서울불바다설이 다시 떠오를 수 있고, 그보다 더 끔찍한 위협이 가해질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서울 불바다는 1994년 제8차 남북실무접촉에서 북한 측 대표가 군사도발을 위협하며 꺼낸 단어다.
우리 국방부는 “실제 (군사적) 행동이 옮겨질 경우 북측은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정호/강영연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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