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머니 막아라"…中 기업 '헐값인수' 차단 나선 EU·英

입력 2020-06-18 07:38   수정 2020-09-16 00:01


유럽연합(EU)과 영국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외국 기업이 자국 기업을 ‘헐값 인수’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에 착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차이나머니’를 앞세운 중국 기업들의 공격적 인수합병(M&A)를 막기 위한 조치다.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는 17일(현지시간) 외국 기업의 EU 기업에 대한 인수 기준 등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자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급받은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EU 기업에 대한 인수 조건을 까다롭게 한 것이 핵심이다.

집행위는 외국 기업이 매출액 1억 유로(약 1364억원) 이상의 EU 기업 지분 35% 이상을 매수하려고 할 경우 자국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 지급 여부를 공시하도록 했다. 보조금 기준은 1000만유로(136억원)다.

해당 기업이 자국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이 EU 기업과의 경쟁에서 불공정하게 작용됐다고 판단되면 벌금을 내야 한다. 만약 해당 기업이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집행위의 판단에 따라 지분 인수가 거부될 수 있다.

집행위는 외국 기업이 자국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이 EU 기업들의 인수에 사용되고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 기업이 국가 보조금에 있어 엄격한 규정의 적용을 받는 EU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앞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티에리 브르통 내부시장 담당 EU 집행위원(사진)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다른 제3국 기업들이 과도한 정부지원을 받는 가운데 유럽 기업들이 해당 규정을 준수하면서 불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르통 위원은 이번 조치가 중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중국뿐 아니라 중동 기업들의 인수 시도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브르통 위원은 “이번 조치는 중국과 협의한 결과 의문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기업의 공격적 M&A를 막겠다는 조치라는 점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중국 기업이 차이나머니를 앞세워 EU 기업과 각종 공공시설을 잇따라 인수했던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중국 기업들은 유럽의 에너지기업과 그리스를 비롯한 각국의 항만시설 등 공공시설을 대거 인수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영난으로 EU 기업 가치가 떨어지면서 중국 기업의 ‘헐값 인수’가 잇따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집행위는 오는 9월까지 논의를 거쳐 이 같은 계획을 내년에 법안으로 제안할 예정이다. 법안은 EU 27개 회원국과 유럽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된다.

앞서 영국 정부는 국가 안보에 위협을 초래하는 외국 자본의 자국 기업 인수 시도를 의무적으로 신고하는 법안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지난 7일 밝혔다. 영국 기업들은 향후 외국 기업이 전체 지분의 25% 이상 또는 중대한 영향력을 취득하거나 자산·지적 재산을 매입하려고 할 때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받은 중국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가치가 떨어진 영국 기업을 공격적으로 매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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