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과 식품 포장업에만 600여 개 기업이 있습니다. 이 산업에 등록된 종사자만 18만2000명입니다. 재포장금지법이 시행되는 줄도 몰랐습니다.”
서울 성수동에서 2007년부터 13년간 직원 30명과 함께 식품 포장업을 해온 A사 대표는 지난 1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환경부가 다음달부터 시행한다는 재포장금지법에 대해 들은 게 없다고 말했다. 환경부가 재포장금지법 시행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중소·중견 포장업계의 의견을 철저히 외면했다는 주장이다.
재포장금지법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의 하위 법령이다. 묶음 판매는 가능하더라도 할인 판매는 불가능한 게 골자다. 예컨대 2000원짜리 제품을 2개 묶어 4000원에 파는 건 가능하더라도 3900원에 판매하는 건 위법이다.
환경부는 지난 1월 제도 시행을 예고한 뒤 6개월 동안 가만있다가 최근에야 대기업과 유통기업 24곳을 불러 간담회를 두 차례 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게 포장업계 경영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포장시장 규모는 약 56조원이다. 이 중 50%가 식품 포장산업이다. 한국패키징총연합회에 등록된 식품과 화장품 등 연성 패키징 기업 수만 600여 개에 이른다. 이들 중 80% 이상이 중소기업이다. 연매출 20억원에서 500억원대까지 다양하다. 절반가량은 연매출 50억원 이하 기업이다. 한 포장업체 관계자는 “벌크로 수입되는 주류와 식품을 판매처 성격에 맞게 분류하고 재포장하는 일을 하는 기업들이 당장 ‘일감 절벽’ 사태에 맞닥뜨리게 됐다”고 말했다.
포장업계는 그동안 환경친화적 포장재를 개발하고, 포장재 자체를 줄이는 데 노력해왔는데 이에 대한 인센티브는 없고 규제만 늘리는 것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비닐 등 특수소재로 코팅하는 ‘라미네이팅’은 이미 상당수 업체가 없앴고 코팅도 환경친화적 방식으로 바꿨다. 한 포장업체 대표는 “그동안 친환경 포장재와 친환경 잉크 등에 수억원을 투입하며 정부 시책에 발맞춰왔는데 몇 달 만에 아예 재포장을 중단하라니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대대적 마케팅을 준비했던 식품 및 화장품 회사들도 공황상태에 빠졌다. 한 주류회사 대표는 “코로나19로 수익이 악화돼 올여름 성수기에 1억원 상당의 사은품 증정 행사를 기획했는데 다 날리게 생겼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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