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옛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 평화의 소녀상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수요시위가 28년만에 처음으로 좌절됐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보수단체 자유연대는 이달 23일 자정부터 7월 중순까지 하루도 빠짐 없이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집회 신고를 했다. 자유연대가 소녀상 위치에서 집회를 하게 된 것이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원래 장소 대신 남서쪽으로 10m가량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 앞에 무대를 만들어 시위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최근 자유연대 등이 종로경찰서 인근에 상주하면서 매일 자정이 되면 집회 신고를 하는 터라 이런 상황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요시위는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에 앞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회원 30여명이 1월 8일 정오 일본대사관 앞에서 연 집회를 시초로 한다.
당시 시위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까지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28년간 같은 장소에서 매주 수요시위가 열렸다.
2011년 12월 1000번째 수요시위를 기념해 평화의 소녀상이 들어섰다.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 자발적으로 집회를 중단했던 정도를 제외하면 수요시위가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지 않은 적은 없었다. 시위에 반대하더라도 근처에서 맞불집회를 열었지, 집회 장소를 선점하는 일도 전례가 없다.
이 일대 집회·시위 신고를 담당하는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수요시위 장소를 다른 단체가 선점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 같다"고 말했다.
집회를 신고한 이희범 자유연대 대표는 "정의연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집회를 중단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시민들이 두 집회를 보고 과연 누가 상식이 있는 자들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의연이 각성하고 윤미향 의원이 사퇴할 때까지" 집회를 계속하겠다는 방침이다.
기부금 횡령 등 의혹 제기에 검찰 수사까지 받는 정의연은 집회 장소를 선점당한 일에 "한국사회가 30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두 집회가 충돌하지 않도록 완충지대를 마련해 현장을 통제한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자유연대 등이 공공조형물인 평화의 소녀상을 훼손한다는 발언을 하고 있어 종로구에서 시설 보호 요청을 해왔다"며 "일단 자유연대 측에 소녀상에서 1∼2m 떨어져 집회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소녀상 주위는 비워둔 채 양쪽 옆 공간에서 자유연대와 정의연이 집회를 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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