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하도급과 근로자 파견의 구별을 둘러싼 법적 분쟁은 제조업을 넘어 서비스산업까지 확산되고 있다. 법원 판결이 일관되지 않아서다.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 자동차 생산라인과 직접 연결되지 않아 간접 공정으로 불리는 △부품 운송 등 물류 업무 △완성차 검사를 하는 출고 업무 △수출용 차량을 야적장에 운송하는 탁송 업무 △수출을 위한 부품 포장 업무 등을 하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완성차 회사와 불법파견 관계가 성립한다며 자동차업체가 이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하급심 판결이 나와 문제다. 자동차 생산이라는 핵심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근로자도 불법파견으로 본 것이다.
특히 2017년 2월 H사 판결 대상 근로자 중에는 소위 2차 물류사 근로자도 포함돼 있다. 2차 물류사는 물류전문회사 또는 부품제조사로부터 자동차 부품의 공급·운송 업무를 도급받은 협력업체로, 공장·창고·운반장비 등을 자체 보유하고 여러 거래처로부터 물류 업무를 도급받아 다양한 사업을 영위할 정도로 독자성을 인정받는 회사들이다. 무엇보다 이들 회사는 H사와는 계약을 맺은 적이 없는 상태인데도 법원이 소속 근로자를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한 것이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 상고돼 3년 이상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근로자 파견 관계는 고용계약을 맺지 않은 당사자들에게도 계약의 구속력을 부여하고, 파견법 위반 시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등 강한 규제의 틀 안에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근로자별로 또는 수급업체별로 제3자와의 관계에서 근로자 파견 관계가 있는지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 기준에 따라 따져봐야 마땅하다.
다행히 최근 하급심 판결은 “다양한 부분과 요소가 종합적으로 반영되는 근로관계의 실질은 동일한 사업장에서도 업체별로 다를 수 있고, 동일한 업체 안에서도 담당 업무와 기간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같은 H사 연구소의 경우 예방·점검 업무에 대한 2019년 9월 판결 등이 전형적인 사례로, ‘도급 업무의 특성’ 등을 고려해 구체적으로 대법원의 ‘도급과 파견 구별기준’에 따라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다. 2017년 2월 판결이 자동차공장 내외의 모든 직간접 공정은 ‘하나의 자동차 생산’을 위한 공정이라고 보고 협력업체별·근로자별 구분 없이 동일한 판단을 했다면, 2019년 9월 판결은 공정별·업무별·시기별로 구분하는 등 개별적으로 판단했다는 차이가 있다. 2017년 2월 하급심 판결의 최종 판단을 앞둔 대법원이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결국 하도급 및 근로자 파견과 관련한 사건들이 법적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상황에서 판결의 기초가 될 △원청회사와 협력업체의 도급계약 내용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실제 업무수행 실태 △협력업체의 실체 등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분석을 통해 원청회사 내 사내하도급에 관한 실태를 명확히 이해하고, 이를 기초로 당사자 간 법률관계의 성격과 내용을 공정하게 판단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법원은 이런 점을 감안해 객관적인 사실관계와 법률의 취지에 기초해 도급과 근로자 파견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을 정하고 신중하게 판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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