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여 가천대 총장 "6·25 때 산화한 학생들 몫까지 봉사해야죠"

입력 2020-06-29 18:06   수정 2020-06-30 00:33


“조국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여생을 나눔과 봉사에 헌신하겠습니다.”

29일 국제라이온스협회가 수여하는 ‘라이온스 인도주의상’을 받은 이길여 가천대 총장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나라 없는 설움을 겪고, 빈자들이 병원 치료 한 번 제대로 못 받고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장은 1986년 마더 테레사 수녀, 1996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2008년 무함마드 유누스 노벨평화상 수상자에 이어 47번째 라이온스 인도주의상의 주인공이 됐다. 상금은 25만달러(약 3억원) 전액을 출연해 ‘가천-국제라이온스협회 의료봉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 총장은 1957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인천에서 보증금 없는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당시에는 가정마다 형편이 어려워 환자들에게 보증금을 받고 입원시키던 시절이었다. 그는 국가 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보증금 없는 병원을 계속했다. 아직도 자궁암은 무료로 검진해주고 있다. 임신부와 태아가 놀랄까 봐 차가운 청진기를 항상 가슴에 품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섬이 많은 인천의 도서지역을 작은 배로 이동하면서 전염병 예방에 힘썼으며, 최전방 백령도에서 병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경기 양평, 강원 철원 등 의료취약지역인 농어촌에도 병원을 설립했다. 이 총장은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환자를 돌보겠다는 결심 때문에 수억원의 적자에도 운영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산부인과만으로 환자에 대한 의무를 다할 수 없다는 판단에 1978년 300병상 종합병원인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을 출범시켰다. 국내 최초로 여의사가 세운 의료법인이었다. 1987년에 산업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주안·남동·시화공단 근로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월동에 중앙길병원을 설립해 현재 1450병상의 가천대 길병원으로 성장시켰다. 최근에는 몽골 캄보디아 카자흐스탄 등 17개국 5000여 명의 어린이에게 무료 심장수술을 시켜줬다. 우즈베키스탄에는 국내 의과대학 최초로 현지 의대를 설립해 의학교육 프로그램을 전수하고 있다.

그는 1997년 설립한 가천의과대학을 한의대 약대 간호대를 갖춘 가천대로 성장시켰다. 이 총장은 “고교 3학년 때 일어난 6·25전쟁 당시 함께 공부하던 남학생들이 학도병으로 참전하면서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다”며 “나는 그들 몫까지 조국에서 나눔과 봉사를 해야 하는 책임과 빚이 있다”고 말했다.

인천=강준완 기자 jeff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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