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석유업체이자 영국 최대 기업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석유화학 사업을 매각했다. 저탄소쪽으로 사업 방향을 바꾸려는 장기 개편안의 일환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를 우려해 자산을 매각해 재정 강화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29일 BP는 자사 홈페이지에 발표한 성명을 통해 자사 석유화학 사업을 영국 이네오스(INEOS)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매각 금액은 50억달러(약 6조25억원)다.
BP는 “올해 말께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아 거래를 완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번 매각은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석유 대기업이 벌인 첫 대규모 거래다.
BP는 이번 계약을 통해 중국, 유럽, 미국에 걸쳐 있는 14개 제조현장·공장 등을 매각한다. 대부분 아로마틱사업과 아세틸스사업 관련 현장으로 작년 기준 970만톤 가량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했다. 아로마틱사업은 폴리에스테르 플라스틱 제조의 핵심 원료인 정제테레프탈산(PTA)과 파라자일렌(PX) 등을 생산하는 분야다. PTA와 PX는 합성섬유, 건축자재, 기계부품소재 등에 쓰인다. 아세틸스사업은 아세트산 등을 생산하는 부문이다.
성명에 따르면 이네오스는 일단 계약금 4억달러를 먼저 지불하고, 연말까지 36억달러를 추가로 BP에 지급한다. 나머지 10억달러는 내년 3~5월에 걸쳐 분할 지급한다. 이번 매각으로 이네오스에 옮겨가는 근로자는 1700여명으로 예상된다.
BP가 이번에 매각하는 사업은 석유화학업계에서도 주요 분야로 꼽힌다. 석유화학 부문 자체도 향후 수년간 석유 수요를 이끌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석유화학 부문은 2030년까지 세계 석유 수요 증가분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주요 외신들은 BP가 코로나19와 저유가로 인한 타격을 줄이기 위해 주요 사업부문을 매각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세계 석유업계는 최근 코로나19발 수요 붕괴에 더불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간 유가전쟁이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요즘 유가는 올초의 70%를 밑돈다. 지난 1월 배럴당 60달러 선에 거래됐던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근월물은 29일 38달러 선에 거래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BP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심각한 재정 타격을 입어 재정 강화 움직임에 들어갔다”고 분석했다. BP도 이날 “이번 매각은 BP를 재정비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라며 “BP의 재무상황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WSJ에 따르면 BP는 주요 석유회사 중 규모 대비 부채 수준이 가장 높은 회사다. BP는 지난 4월 부채비율(기어링)이 리스를 포함해 40%로, 전 분기(35%)보다 올랐다고 발표했다.
BP는 부채비율을 20~30%로 낮추는게 목표다. 이를 위해 내년 중반까지 150억달러 규모 자산을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브라이언 길바리 BP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번 거래로 BP는 계획보다 1년 일찍 자산매각 목표치를 달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버나드 루니 BP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석유화학사업은 BP의 나머지 사업들과 전략적으로 크게 겹치지 않는다”며 “때문에 이 사업을 성장시키려면 상당한 자본이 필요할텐데, 보다 집중적이고 통합적인 BP를 구축하기 위해선 (석유화학부문 육성이 아니라) 다른 기회를 찾는게 미래 방향에 더 부합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매각 사실이 발표된 뒤 영국 증시에서 BP 주가는 오름세가 뚜렷하다. 시초가(주당 303.40파운드)보다 약 3.4% 높은 315파운드 선에 거래되고 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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