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정부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에 한국 금융회사와 기관들이 ‘1호 펀드’로 참여해 투자은행(IB)업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투자를 주도한 이준호 EMP벨스타 한국 대표(사진)는 30일 기자와 만나 “K머니로 불리는 한국 금융자본의 경쟁력은 이제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지난 3월 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자산담보부증권(ABS) 시장이 충격을 받자 긴급하게 유동성을 제공하기 위해 기간자산담보대출(TALF)이라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EMP벨스타는 국내 금융사와 기관들로부터 5억8000만달러(약 7000억원)를 조성, 펀드를 만들어 약 2개월 만에 TALF에 첫 펀드로 등록했다. 블랙록 등 유수의 글로벌 투자사들보다 더 빨랐다.
EMP벨스타는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누적 운용자산 59억달러의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다. 이 대표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폭풍이 불던 시절 TALF 펀드를 조성한 경험이 있다. 그는 “10년 전에는 기관들도 ABS를 막연하게 두려워해 3억달러 규모 펀드를 조성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며 “이번엔 두 배 수준인 펀드를 2개월 만에 모았다”고 설명했다. TALF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얼어붙은 미국 소비자 대출 시장을 살리기 위해 2009년 처음 도입됐다. 민간 투자자가 학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신용카드 대출 등을 유동화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사들일 때 Fed가 투자금의 평균 10배에 달하는 돈을 초저금리(약 연 1%)로 빌려준다. 1억달러를 가지고 10억달러어치를 사들일 수 있는 셈이다. Fed는 올 9월 말까지 총 1000억달러 규모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TALF는 미국에서 발행되는 ABS 중 AAA등급에만 투자한다”며 “금융위기 때도 이 등급의 ABS는 단 한 건의 부도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반면 연간 수익률은 두 자릿수에 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시장에 유동성이 충분히 공급돼 ABS 금리가 평소 수준으로 떨어지면 TALF 프로그램이 종료되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늦으면 투자 기회를 잃는다”며 “K머니가 속도전에서 승리한 셈”이라고 말했다. EMP벨스타는 최근 골드만삭스, SK그룹과 함께 냉동창고, 연료전지 발전소 등에도 투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