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이미 40조 샀는데도…예탁금 사상 첫 50조

입력 2020-06-30 17:18   수정 2020-07-01 00:46

국내 증시의 투자자예탁금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5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말 20조원대 수준이던 예탁금은 6개월 만에 약 두 배로 불어났다. 올 상반기 개인투자자들은 코로나19발(發) 폭락장을 계기로 국내 주식시장에서 40조원어치 순매수했다. 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 순매수를 기록하고도 증시 대기자금이 늘어나는 것은 개인들이 지속적으로 투자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올해 기업공개(IPO) 최대 유망주인 SK바이오팜의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에 몰린 31조원까지 증시 주변 자금으로 남아 이 뭉칫돈의 향방에 시장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상반기 40조원 주식 사들인 개인

3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50조5095억원을 기록했다. 예탁금이 50조원을 넘어선 것은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98년 이후 처음이다. 투자자예탁금은 언제든지 증시에 투입될 수 있는 대기자금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27조~28조원 수준이던 예탁금은 올 들어 서서히 증가하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증시가 폭락한 3월을 기점으로 45조원으로 불어났다.

최근까지 40조원 후반대를 꾸준히 유지하던 예탁금은 26일 다시 하루 사이에 4조원 급증했다. 증권가에서는 SK바이오팜의 공모주 배정 이후 청약 증거금 환불금이 이날 입금된 영향으로 보고 있다.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이뤄진 SK바이오팜 청약에선 31조원에 달하는 증거금이 몰려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 경쟁률이 323 대 1까지 치솟으며 주식 배정을 받지 못한 대부분의 증거금이 환불돼 이 중 상당 금액이 주식시장 주변에 머무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개인들은 올 상반기 이미 40조원에 가까운 돈을 국내 주식시장에 쏟아부었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코넥스시장까지 합치면 올 1월부터 6월까지 개인의 국내 주식 순매수 규모는 39조6883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기관과 외국인이 각각 14조3796억원, 26조5650억원어치 순매도한 것과 대조된다. 개인은 6월에도 5조2950억원어치 순매수하며 사상 첫 6개월 연속 5조원 이상 순매수 기록을 세웠다.

50조원 예탁금은 어디로

올 들어 두 배로 커진 증시 대기자금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SK바이오팜 청약에 나선 신규 투자자 중 상당수는 환불받은 증거금을 통해 주식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를 겨냥해 한국투자증권 등은 SK바이오팜 청약에 참여한 영업점 거래 고객을 대상으로 7월 10일까지 펀드나 주가연계증권(ELS) 등에 가입한 경우 현금을 지급한다는 이벤트를 내걸기도 했다.

개인들은 지수가 하락할 때마다 순매수 규모를 늘리며 하방을 지지하는 주체로 떠올랐다. 코스피지수가 2%대 하락세를 보인 25일 개인들은 1조7300억원어치 순매수했고, 1.93% 내린 29일에도 3755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외국인과 기관이 주식을 팔아치울 때도 개인들은 지수가 빠진 틈을 타 시장을 사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6월 한 달간 기관은 4조원 넘게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6월 8664억원어치 팔아치웠지만 지난 4~5월 4조원대에 달하던 순매도 규모는 축소되고 있다.

IPO 시장에서 대어급 상장이 줄줄이 예정돼 있어 이쪽으로 뭉칫돈이 몰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방탄소년단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게임즈, 솔루엠이 최근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하고 하반기 공모주 청약을 받을 예정이다. 게임 ‘테라(TERA)’로 유명한 초대어급 크래프톤(옛 블루홀)도 하반기 상장에 나설 예정이다. 콘텐츠 대장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카카오페이지는 하반기 또는 내년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최근 개인투자자 열풍은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대비 예탁금 비율이 4~5%를 기록했던 1990년대 후반을 떠올리게 한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 후반 시장 변동성에 더해 인터넷 보급과 홈트레이딩서비스(HTS) 개발이 시장 참여를 빠르게 높였듯, 코로나19가 모바일트레이딩서비스(MTS)로의 금융 플랫폼 이동을 가속화하면서 개인들의 주식시장 접근성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원은 “기술 진보에 질병, 자산가격 급락 등 세 가지 요소가 맞물리며 시장 환경을 바꾸고 있다”고 분석했다.

설지연/고윤상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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