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도 "분식회계 단정 못해"
체르노빌 폭발과도 같은 충격파를 자초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정부다.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016년 상장 당시 자신들이 ‘적정’을 확인해준 삼바 회계장부를 다시 헤집어보더니 2018년 11월 돌연 ‘분식’으로 판정했다. 2주 만에 낙마한 김기식 금감원장이 친정인 참여연대와 호흡을 맞춰 이슈를 꺼내놓은 게 사태의 발단이 됐다. 증선위 고발로 시작된 검찰 수사도 유례없이 가혹했다. 1년7개월간 관련 압수수색만 50여 차례 진행했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엊그제 검찰과 변호인으로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혐의에 대한 공방을 듣고는 ‘불기소 및 수사 중단’을 권고했다. 검찰·증선위를 합쳐 38개월이나 세상을 뒤집을 듯 수사한 결과치고는 허망하다. 삼성을 ‘적폐 수괴’쯤으로 여기는 이른바 진보진영에선 ‘삼성 장학생’들이 심의에 참여했다며 반발 중이다. 하지만 그간의 경과를 유심히 지켜본 이들에게 불기소 권고는 예상된 결과다. 법원은 심의위에 앞서 열린 8번의 판결·가처분·구속영장 심사에서 일관되게 삼바 손을 들어줬다. ‘회계처리의 위법성을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서울행정법원·고등법원·중앙지법은 물론이고 대법원도 같은 결론을 냈다.
심의위 결정에서 더 주목할 것은 ‘수사중단’을 권고한 대목이다. 검찰 수사가 국민 기본권을 위협할 만큼 비상식적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분식회계가 있었다면 책임이 가장 큰 김태한 삼바 대표부터 사법처리하는 게 순서다. 하지만 검찰은 김 대표의 구속영장이 두 차례 기각되자 그를 건너뛴 채 이 부회장 구속을 시도하는 편법과 과잉수사로 빠져들고 말았다.
‘9전 전패’의 초라한 성적표는 무리를 무리로 덮는 아슬아슬한 수사의 필연이다. 삼바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할 때부터 바이오젠과 공동지배하면서 단독지배처럼 분식했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지분율 85%, 압도적 이사회 장악력을 가진 자회사의 소액주주에게 행사 가능성이 없는 ‘외(外)가격 옵션’을 부여한 사실을 들어 단독지배를 부인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삼바가 장부가 3000억원짜리 기업을 시가 4조8000억원으로 뻥튀기했다는 것도 검찰의 레퍼토리다. 삼바는 유가증권시장 3위로 시가총액이 52조원이다. 지금 보면 4조8000억원은 턱없는 저평가로 책임을 물어도 될 판이다.
무리를 무리로 덮는 수사 여전
검찰 수사의 최종 목표는 삼바 분식회계로 제일모직 기업가치를 부풀리고, 이를 통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부당이득을 거뒀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합병 주총은 2015년 7월이고, 삼바의 회계처리는 이보다 늦은 2015년 12월이었다. 회계방식 변경이 합병 비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의미다.
증선위나 시민단체의 주장이 먹혀 서둘러 대표를 수감했다면 이런 성공이 가능했을까. 삼바가 평범한 바이오벤처였다면 혹독한 수사에 따른 신뢰 추락, 천문학적 소송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십중팔구 망가졌을 것이다. 이런 아찔한 상상을 이제는 검찰도 함께 해봐야 할 때가 됐다.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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