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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1일 라임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에 사상 처음으로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적용해 전액 배상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 금융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판매사도 사기를 당했는데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라임 무역금융펀드가 ‘총체적 부실덩어리’였다는 것은 이미 드러났다. 펀드 부실을 알고도 운용을 지속한 라임과 신한금융투자가 이에 걸맞은 제재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펀드 운용에 개입하지 않아 부실을 사전에 몰랐던 판매사들에까지 전액 배상결정을 내린 건 과도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펀드사기의 피해자이기도 한 판매사가 투자손실을 모두 물어주는 것은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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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조위는 이번에 108건 중 4건의 대표적 사례를 뽑아 분쟁조정 결정을 내렸다. 4건 모두 2018년 11월 이후 무역금융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이 제기했다. 이들이 제기한 분쟁조정은 총 72건, 판매액 규모는 1611억원 정도다. 판매사별로는 우리은행이 650억원으로 가장 많고 신한금투(425억원), 하나은행(364억원), 미래에셋대우(91억원), 신영증권(81억원) 순이다.
금감원은 “2018년 11월 이후 가입한 피해자에 대해서는 이번 분조위 결정 내용에 따라 조속히 자율조정이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2018년 11월 이후 무역금융펀드에 가입한 다른 피해자에게도 이번 분쟁조정 결과를 참고해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투자원금 전액을 돌려주라는 얘기다.
2019년 1월 라임과 신한금투는 IIG펀드 투자액 2000억원 중 최소 1000억원가량의 손실 가능성을 파악했다. 2월엔 2000억원 규모 남미 무역금융펀드(BAF) 환매 중단 통보를 받았다. 그러자 양측은 싱가포르에 있는 로디움이라는 일종의 페이퍼컴퍼니(SPC)에 펀드 수익권을 넘기며 부실 은폐를 시도했다.
그래서 금감원은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란 법리를 끌고 왔다. 민법 제109조는 계약 등 법률행위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경우 계약의 취소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착오는 ‘계약체결 시점에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뜻한다. 만약 이런 인식(착오)이 없었더라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만큼 중요한 정보 등을 의미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착오는 사기와 달리 판매사의 중과실 여부 등이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라며 “사기보다 피해자 구제에 시간이 적게 걸리면서 동일한 효과가 발생하는 착오에 의한 취소로 결론내렸다”고 설명했다.
펀드 부실을 사전에 몰랐던 다른 판매사들에도 마찬가지로 전액배상 책임을 내린 건 형평성 측면에서 부당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일단 계약 당사자인 판매사가 먼저 배상을 하고 최종 책임을 누가 지는지 여부는 금융사 간 구상권 소송 등을 통해 가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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