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의 원죄는 20여 년 전 실험실에서 찾아낸 유전자 변형 물질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유전자 치료제는커녕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이다. 지금처럼 정밀하게 유전자를 분석하는 장비는 물론 없었다. 아마도 성분 오류를 알아채지 못한 연구원들은 새로운 발견에 환호하고 또 축배를 들었을 것이다.
여기서 꼭 짚어봐야 할 게 있다. 신약 개발의 우연성이다. 의약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당초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와 인류의 질병을 치료하는 블록버스터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약물로 살균제를 개발하던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을 없애려다 해열과 통증을 줄여준다는 사실이 확인돼 진통제로 거듭난 아스피린이 대표적이다.
인보사의 주요 성분이 신장세포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의료계 일각에서는 종양 가능성을 제기했다. 방사선 조치로 종양원성을 제거하고 판매 허가를 받았다는 회사 측과 식약처의 설명은 묻혔다. 이런 목소리가 커지자 인보사를 처방받은 3700여 명의 환자는 암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결국 식약처는 사건이 불거지고 불과 2개월 만에 허가 취소라는 초강경 조치를 내렸다. 논란이 된 종양원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절차조차 없었다.
이 전 회장 등 코오롱 경영진이 성분 오류 사실을 언제 인지했는지 여부는 부수적인 문제다. 약물 부작용을 의도적으로 숨겼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는 게 맞다. 그런데도 이런 조사나 논의는 없다.
신약 개발은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하는 도박이나 다름없는 사업이다. 연구실에서 발견한 100개 신약 후보물질 중 실제 시장에 출시되는 것은 한 개도 안 된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은 산업이다. 게다가 과정을 따져서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이 무의미한 분야이기도 하다. 아스피린 같은 우연성 때문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환자에게 유익하냐를 먼저 따지는 FDA의 셈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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