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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봄은 입사 첫날의 벅찬 기분을 소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재택근무 덕이다. 기자 집에서 회사까지는 차로 10분 거리다. 그러나 침대에서 책상까지 가는 시간은 1시간 이상 걸렸다. 지치고 늘어지고…집과 일터가 분리되지 않은 건 지옥이었다. 일이 끝나도 퇴근할 곳이 없다는 사실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한참 만에 다시 출근할 수 있게 된 기쁨은 입사 첫날의 그것과 비슷했다. 모든 게 새롭고, 많은 것이 반가웠다.
‘집에서 집으로 출근하고, 집에서 집으로 퇴근하는 시대’에 사무실은 사라질까. 틀렸다. 코로나19는 역설적으로 더 멋진 사무실을 요구한다. 어쩌다 한번 오는 회사라면, 정해진 날에만 올 수 있는 공간이라면 조금 더 특별해야 한다. “어쩌면 오피스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다.
미국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1989년 발간한 《제3의 장소(The Great Good Place)》에서 집을 제1의 공간, 직장 또는 학교를 제2의 공간으로 규정했다. 인류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장소를 ‘제3의 장소’라고 했다. 집도 직장도 아닌 중간지대. 비공식적 공공생활이 이뤄지고, 누군가와 교류하려는 욕구를 채워주는 공간이다.
유럽의 커피하우스, 골목길의 펍, 미용실 등이 모두 제3의 장소다. ‘커피가 아니라 공간을 판다’는 스타벅스의 철학도 뿌리는 제3의 장소다. 한국에선 시골 장터와 다방 정도가 되겠다. 회사원들이 퇴근 후 부장님 몰래 가던 호프집을 포함해서.
제3의 장소가 1980년대 도시사회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건 집(제1의 장소)과 직장(제2의 장소)의 구분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가족과 직장, 틈새공간이라는 세 개의 영역이 균형을 이룰 때 인간은 편안함을 느낀다. 다시 코로나19 이후를 고민한다. 집과 직장의 구분이 희미해졌다. 제1의 공간과 제2의 공간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올든버그가 말한 제3의 공간의 의미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동료들 간의 관계는 더 끈끈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유 오피스 위워크의 한 컨설턴트는 “현대인은 직장 동료를 가족보다 더 자주, 오래 보면서 서로 얼마나 가치있고 소중한지 모르고 지내왔다”고 했다. 《오리지널스》의 저자이자 조직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도 “팬데믹 후 다시 만난 동료들은 말 한마디도 더 의미있게 하고, 개인의 안부를 묻는 일도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악수를 하지 못하고, 마스크를 쓰면서 실제 만남에선 상대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고, 눈을 더 오래 마주칠 것이라는 휴머니즘적 분석도 있다. ‘코로나19로 영원한 재택근무를 보장하겠다’는 트위터는 직원들이 재택근무 시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동료끼리 돕는 ‘부엉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스티브 잡스는 미리 알았던 것 같다. 픽사 인수 후 그는 회사 건물에 화장실을 한 개만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우연한 만남과 임의적 협력을 촉진하는 설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하루에 한 번 이상 가는 화장실을 건물 중앙에 두고 직원들을 만나게 했다. 창조적 생각은 지루한 미팅이 아니라 우연한 만남에서 온다는 걸 그는 직관적으로 알았다. 미국 3대 통신사 블룸버그 뉴스룸 문을 열면 바로 앞에 모여 수다를 떠는 공간이 있다.
우리는 사무실을 진화시키는 동시에 늘 탈출을 꿈꿨다. 하지만 통신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재택근무는 자리잡기 어려웠다. IBM, 야후 등 많은 회사가 재택근무 실험에 실패했다. 이유는 비슷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실제로 가까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야후는 2013년 재택근무 금지령을 내리며 이렇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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