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과 100억대 분쟁서 완승…'중재자 로펌' 존재감 커졌다

입력 2020-07-05 17:51   수정 2020-07-06 01:0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납품 지연, 계약 취소 등 국제 상거래 분쟁이 많아지고 있다. 자연스레 국내 법무법인(로펌) 국제중재 전문 인력들의 활동 반경도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요 대규모 국제중재 사건에서 의미 있는 승소를 거둔 사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국내 로펌들은 조직을 키우고 인력을 보강하며, 커지는 국제중재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경쟁에 들어갔다.
만리장성 넘어서는 한국 로펌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의 협력업체인 A기업은 지난 3월 중국 최대 중재기관인 국제경제무역중재위원회(CIETAC)에서 열린 중국 기업과의 100억원대 대금 미지급 관련 국제중재에서 전부 승소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지연이자와 변호사 비용까지 받아내는 ‘완승’을 거뒀다. 중국 측 의뢰를 받아 장비 제작에 착수했는데,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으로 중국 업체가 장시간 대금을 지급하지 않자 A기업이 계약을 해지하고 미지급금 지급을 구하는 국제중재를 제기한 것이다. 사법 투명성이 낮고 자국 우선주의 경향이 강한 중국의 중재기관이 현지 기업에 불리한 판정을 내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A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대리했다. 윤병철 변호사가 총괄했고, 이철원 변호사와 손금란 중국변호사 등이 실무를 주도했다. 이 변호사는 “중재인 선정 과정에서 법관 출신이 아니라 사내변호사나 통상 경험이 있는 중재인들을 선정하려고 신경을 쓴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태평양도 지난 4월 중국 법원으로부터 자국 기업에 불리한 내용의 국제중재 판정 집행 결과를 이끌어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대홈쇼핑과 중국 업체의 국제중재에서 태평양은 현대홈쇼핑을 대리해 2018년 100억원대 승소 판정을 받아냈다. 하지만 중국 법원은 갖은 이유를 대며 판정 결과 집행을 거부했다. 김준우 변호사와 김세진 미국변호사 등이 2년에 걸쳐 노력한 끝에 현대홈쇼핑은 131억원을 받아낼 수 있었다.

율촌도 러시아산 석탄의 세계 최대 공급사로 꼽히는 한 유럽 업체가 국내 대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SIAC) 국제중재에서 최근 승소 판정을 받아냈다.

산업계는 종전의 통념을 깨는 이 같은 승전보 사례를 반기고 있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중국에 진출한 기업 상당수가 공정하게 권리 구제 절차를 밟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며 “국제중재 승소 사례가 축적될수록 이 같은 우려가 불식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점점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춰가는 측면과 더불어 국내 국제중재 인력들의 실력이 향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국제중재팀 강화 경쟁
법무법인 광장도 최근 의미 있는 국제중재 승소 사례를 선보였다. 국내 전동차 회사인 B기업을 대리해 인도 국영기업을 상대로 싱가포르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에서 승소를 거둔 게 대표적이다. B기업은 자사의 핵심기술을 전수하며 인도 기업과 독점적 제휴를 맺었는데, 상대방이 7년이 지난 시점에서 계약을 어겼다. B기업은 이미 핵심기술이 넘어간 데다 중재 결과에 따라 향후 인도 사업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ICC는 마지막 심리를 끝낸 뒤 1년간 고심 끝에 B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법무법인 세종의 김두식 대표변호사는 국내 국제중재 분야의 선구자로 통한다. 세종은 국내 게임업체 위메이드와 중국 기업 저장환유의 800억원대 지식재산권(IP) 관련 국제중재 분쟁에서 위메이드를 대리해 지난 3월 승소했다. 전재민 윤영원 변호사 등이 현재 세종의 주포로 활약하고 있다. 위메이드는 중국 업체인 지우링과도 국제중재 분쟁이 있었다. 이번 사건에선 KL파트너스가 위메이드를 대리, 지난 5월 대한상사중재원(KCAB)에서 승소를 이끌어냈다.

화우는 지난달 분쟁가액이 2억달러 규모인 부동산개발 프로젝트와 관련한 ICC 국제중재 사건에서 한국 기업을 대리해 승리를 거뒀다. 작년에는 한국 정부에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첫 승소를 안겼다. 국제중재에서 외국어 능력과 외국법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데, 화우는 ICC 등 유수의 해외 중재센터 출신 외국변호사들을 지속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태평양은 올 들어 기존 국제중재팀을 국제중재소송그룹으로 확대 개편했다. 강동욱 변호사가 그룹장을, 방준필 외국변호사가 그룹 내 국제중재팀장을 맡았다. 율촌은 미국계 로펌인 오멜버니앤마이어스 서울사무소의 공동대표를 지낸 김용상 외국변호사를 지난 5월 공동팀장으로 영입하며 국제분쟁팀을 보강했다. 김갑유 변호사의 주도로 올해 1월 본격 출범한 피터앤김도 대표적인 국제중재 전문 로펌으로 통한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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