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선(25)이 버치힐GC 17번홀(파3)에서 2m 남짓한 파 퍼트를 남겨뒀다. 경사가 까다로운 이 홀은 선수들이 1라운드에서 기준 타수보다 0.28타를 더 치는 등 대회 기간 어렵게 플레이된 홀 중 하나다. 한때 1m 이내 짧은 퍼트를 자주 놓쳐 입스(yips)에 걸린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낳았던 터다. 몇 차례의 심호흡에 이어 홀 앞뒤로 여러 차례 경사를 살핀 김민선은 침착하게 홀 한가운데로 공을 밀어넣었다. 18번홀(파5)에서도 골프의 신은 그를 한 번 더 시험했다. 홀까지 약 70㎝ 남은 챔피언 퍼트 상황에서 그는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땡그랑’ 소리가 그린을 둘러싸던 적막을 깼다. 3년3개월(1169일) 만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마지막 퍼트를 못 넣으면 다신 우승하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넣어서 정말 다행”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장타 여왕’ 김민선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정상에 올랐다. 5일 강원 평창군 버치힐GC(파72·6434야드)에서 열린 KLPGA투어 맥콜·용평리조트오픈(총상금 6억원) 최종 3라운드를 2언더파로 마쳤다. 버디 5개와 보기 3개를 적어낸 그는 최종합계 12언더파 204타를 기록해 공동 2위 그룹을 1타 차로 따돌렸다.
2017년 4월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 이후 3년3개월 만의 우승. KLPGA투어 통산 5승째다. 대회 전까지 상금 93위(2210만원)에 머물며 시드 유지 걱정을 하던 그는 향후 2년 시드를 확보했다. 또 우승 상금 1억2000만원을 가져가 상금 10위권까지 뛰어올랐다. 김민선은 “다시 우승할 수 있을지 스스로 수백 번은 물어본 것 같다”며 “티샷에서 시작한 부진이 쇼트게임, 퍼팅으로 이어졌다. 긴 부진을 끝내도록 함께해준 스폰서들에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숫자 4는 김민선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동갑내기인 세계 1위 고진영, 백규정과 ‘95년생 트로이카’로 불리며 2014년 데뷔한 그는 매년 꾸준히 1승씩 수확했다. 2017년에는 4승째를 신고했지만 이후 3년3개월 가까이 우승이 없었다. 아홉수(數)처럼 김민선에겐 ‘4’가 그런 존재였다. 2018년엔 드라이버가 말을 듣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짧은 퍼트를 놓치는 상황까지 자주 벌어졌다.
이번주는 달랐다. 270야드를 쉽게 넘기는 장타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여기에 페어웨이 안착률이 88%에 달할 정도로 정확도까지 날이 섰다. 마지막 챔피언 퍼트로 짧은 퍼팅에 대한 두려움마저 모두 날렸다.
이소영(23)의 다승 도전은 아쉽게 무산됐다. 이날 4타를 줄이며 김민선을 턱밑까지 추격했으나 11언더파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15번홀(파4) 보기가 ‘옥에 티’였다. 성유진(20)이 동타로 공동 준우승을 기록했다.
경기 막판 리더보드 상위권을 대거 점령해 첫 승을 노리던 ‘루키’들의 반격은 무위로 그쳤지만 그 자체로 빛났다. 노승희 이슬기 현세린(이상 19)이 9언더파 공동 4위, 유해란(19)이 8언더파 공동 7위, 전예성(19)이 7언더파 공동 9위로 마무리했다. ‘톱10’의 절반을 루키들이 채운 것이다. ‘디펜딩 챔프’ 최혜진(21)이 유해란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2주 연속 우승에 도전한 ‘포천힐스 퀸’ 김지영(24)은 6언더파 공동 11위를 기록했다. 10번홀(파5)에서 이글을 잡자마자 11번홀(파4)에서 더블 보기를 범한 것이 아쉬움을 남겼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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