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신용등급 하향 기업이 상향 기업의 네 배를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등급 상·하향 비율이 이 정도로 악화한 것은 2015년 하반기 이후 4년 반 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충격이 본격적으로 기업 재무 체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기가 코로나19 사태 영향에서 빠르게 회복하지 못한다면 내년에는 더 많은 강등이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 사태로 실물경제가 위축되면서 기업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전반적으로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올 들어 신용등급 강등 기업은 주로 건설·유통·자동차·해운 등 경기 민감도가 큰 업종에서 나왔다. 이마트(유통)와 LG디스플레이(전자), OCI(태양광) 등 다수의 업종 간판 기업이 기존의 신용을 지키지 못했다.
연이은 신용등급 강등으로 투자자의 불안이 커지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주말 기준 3년 만기 ‘AA-’ 등급 회사채 평균금리는 연 2.24%로 지난 3월 초 이후 0.51%포인트 뛰었다. 이 기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0.50%로 두 차례에 걸쳐 낮췄음에도 회사채 금리가 상승한 영향이다. 기업의 부도 가능성을 둘러싼 투자자 우려를 나타내는 지표인 신용스프레드(국고채와의 금리 격차)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로 벌어졌다. AA- 등급 회사채와 국고채 간 금리 격차(3년물 기준)는 1.40%포인트로 2009년 7월 31일(1.42%포인트) 후 11년 만의 가장 높은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기업들은 투자심리 위축을 반영해 평소보다 금리를 대폭 높여 기관의 수요예측 참여를 유인하고 있다. 지난 2일 연 2.997%(3년물)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한 OCI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채권평가사 평가금리(민평금리)보다 0.90%포인트나 높은 이자 지급을 약속했다. OCI 외에도 민평금리 대비 가산금리를 0.6%포인트 이상 제시하는 기업이 적지 않아 하반기 자금 조달 여건의 개선을 낙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용등급 강등 후보 기업도 크게 늘어났다. 한국기업평가가 지난 상반기 새롭게 신용등급에 부정적(하향 검토 포함) 전망을 붙인 기업은 30곳에 달한다. 작년부터 부정적 전망을 달고 있던 26곳을 합하면 총 56곳이 등급 하락 위험에 직면해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약 400개사의 신용등급을 평가하고 있다.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상반기에는 코로나19 영향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면서 신용등급을 내리기보다 등급 전망부터 ‘부정적’으로 바꾼 사례가 많았다”며 “신용등급 강등은 올해 4분기 실적을 공개하는 내년 초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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