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해제에 방역고삐 풀린 英…공공장소서도 'No 마스크' [현장에서]

입력 2020-07-06 11:04   수정 2020-10-04 00:02

일요일인 5일(현지시간) 오후 3시께 영국 런던의 번화가인 소호 지역. 다소 이른 시간인데도 인근 펍(pub)과 레스토랑은 사람들로 붐볐다. 야외에 마련된 테이블에선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은 채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정부 지침인 1m의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런던의 대표 쇼핑가인 본드가에 자리잡은 셀프리지 백화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고가 대량으로 쌓이면서 최대 90%에 달하는 ‘폭탄 세일’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인파로 붐비는 백화점 안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지난 4일 오전 6시를 기해 잉글랜드 지역의 펍과 레스토랑, 호텔에 대한 영업 재개를 허용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지난 3월23일부터 봉쇄조치가 시작된 지 3개월여만이다. 앞서 영국 정부는 지난달 15일부터 백화점과 상점 등 비(非)필수 영업장의 문을 연 데 이어 펍과 레스토랑 영업을 재개하면서 경제활동을 전면 재개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펍과 레스토랑의 영업 재개는 코로나19에서 회복하기 위한 여정에서 가장 큰 조치”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역사상 최악의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가운데 봉쇄해제를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 4일부터 번화가인 소호를 비롯한 런던 곳곳의 펍과 레스토랑엔 밤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로 붐볐다. 3개월여 동안의 봉쇄에 지친 사람들이 쏟아져나온 소호 지역은 코로나19 직전의 번잡했던 모습을 방불케 했다. 일부 펍과 레스토랑은 1m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내부 공간은 폐쇄한 채 야외 테이블 위주로 영업을 재개했다. 이렇다보니 길거리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붐벼 지나가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영국에서 펍은 단순한 음주 공간을 넘어 이른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다. 펍이라는 이름도 ‘공공의 집(public house)’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BBC와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펍 개장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상당수 펍과 레스토랑은 지난 주말 동안 영업 재개준비를 끝내고 6일부터 영업을 재개할 계획이다.

북아일랜드에선 잉글랜드보다 하루 앞선 지난 3일부터 펍과 레스토랑 영업이 재개됐다. 스코틀랜드에선 15일부터 영업이 전면 허용된다. 웨일스는 아직까지 영업 재개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다.


영국 정부의 봉쇄 해제방침을 놓고 전문가들은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영국의 코로나19 관련 봉쇄조치가 당분간 유지돼야 한다고 지난달 경고했다. 영국 정부의 확진자 추적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영국 정부는 펍과 레스토랑 영업 재개를 허용하면서 출입 손님들에 대한 명부 작성지침을 내렸다. 펍과 레스토랑을 방문한 손님들은 이름과 연락처 등을 적은 명부를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기자가 지난 주말 동안 찾은 펍과 레스토랑 10여곳 중 명부를 작성한 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 한 곳에 불과했다.

정부의 잇단 권고에도 마스크 착용을 꺼리는 영국 특유의 문화도 코로나19 재유행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15일부터 버스와 지하철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벌금이 부과된다.

실상은 다르다. 지금도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시민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정부 지침이 처음으로 내려진 지난달 중순엔 경찰들이 주요 지하철역에서 마스크 착용 여부를 검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이 때문에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어떤 제지도 받지 않는다. 경찰도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시민들을 봐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다.

더욱이 대중교통을 제외한 백화점과 상점 등 공공장소에선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아니다. 입구에 손소독제(hand sanitizer)만 배치돼 있을 뿐이다. 규모가 작은 소규모 상점에선 인원 수를 제한하고 있지만, 백화점과 대규모 상점에선 어떤 제한도 없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시민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독일과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세계적인 여론조사기관인 유고브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한다고 응답한 영국인은 30%에 불과하다. 90%에 육박하는 아시아 국가와 비교된다. 더욱이 TV에 비치는 영국 정치인들도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 코로나19에 걸려 중환자실까지 다녀와야 했던 존슨 총리조차도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 이렇다보니 영국에선 마스크를 착용한 동양인들에 대한 혐오 인종차별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욱이 외국인 입국자에 대한 자가격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8일부터 모든 입국자를 대상으로 14일간 자가격리를 의무화했다. 자가격리자에 대해 철저하게 추적 및 관리하는 한국과 달리 영국에선 이런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가격리자들이 시내 곳곳을 활보해도 어떤 제지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이렇다보니 관련업계는 이 같은 자가격치 조치가 어떤 방역효과도 없이 외국인 관광객 입국만 막았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영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이날 기준 4만4305명이다. 전 세계에서 미국과 브라질에 이어 세 번째이며, 유럽에선 가장 많다. 확진자는 28만6931명으로, 유럽에서 스페인에 이어 두 번째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영국의 이날 신규 확진자는 600여명이다. 봉쇄조치가 해제되면서 신규 확진자 수가 폭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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