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호의 논점과 관점] 예외적 한국 민주주의의 함정

입력 2020-07-07 17:54   수정 2020-07-08 00:44

지난 주말 미국인들은 낯선 독립기념일(7월 4일) 광경을 마주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념 연설이 끝나자마자 워싱턴DC 거리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가 성조기를 불태운 것이다. 1시간 떨어진 볼티모어에선 원주민(인디언)을 탄압했다며 시위대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을 바다에 빠트렸다. 최대 국경일에 미국 민주주의의 ‘예외적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는 19세기 유럽인 알렉시 드 토크빌의 눈에 비친 모습이다. 토크빌의 관념에서 신분제를 벗어던진 자유와 평등의 ‘민주정치 실험장’ 미국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주(州)라는 분권과 연방이라는 집권의 조화, 사법체계의 독립과 철저한 법치주의, 시민군 봉사와 납세의무를 선거권과 교환한 나라…. 출발부터 ‘예외적’이었던 미국은 세계 최초로 보통선거권(백인 남성)을 보장했고, 대통령 선거 투표율은 70~80%에 달했다.
허물어진 '미국 예외주의'
그랬던 미국 민주주의가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2018년 중간선거 투표율(49%)은 ‘트럼프 효과’로 높게 나왔을 뿐, 2000년대 들어 상·하원 선거에는 유권자 3분의 1만 참여했다. 50% 안팎의 대선 투표율은 트럼프가 극적으로 당선된 2016년에도 54.7%에 머물렀다. 유럽 국가들에 훨씬 못 미치는 투표율을 놓고 ‘새로운 미국 예외주의’라는 메타포도 등장했다.

양극단을 오가며 예외적 민주주의를 노정하는 나라에 한국도 있다. 1960년대 서구와 일본까지 휩쓴 좌파 및 반전(反戰) 운동의 물결이 1980년대 이후 잦아들었지만 한국에서는 군사정권에 맞선 민주화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김대중 정부를 거치며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모범국으로 칭송받을 때 ‘예외적 한국 민주주의’는 가장 밝게 빛났다.

정점은 국정 비선 운영에 대한 분노로 폭발한 촛불민심이다. 하지만 최초의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진 것이 어쩌면 미국처럼 ‘새로운 예외주의’의 전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느낌을 강하게 주는 발언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루자는 게 대표적이다. 법치주의의 주춧돌이 절차인데도 그걸 뛰어넘어 무슨 ‘깜깜이 민주주의’를 하자는 건지 헷갈린다. 정치적 해석이 다분할 수밖에 없는 ‘민의’를 잘 살펴 모든 국가기관과 사법체계마저 따라야 한다고 강변한다.
깜깜이 民意와 힘의 정치 난무
이러니 당·정 수준으로 내려가면 엇박자가 나는 게 당연하다. 정치 싸움이 급해서인지 이번엔 ‘법대로 하겠다’고 외친다. ‘검찰총장 지휘권이 법무부 장관에게 있으니, 법에 명시된 대로 지휘권을 행사하겠다’는 압박이 그런 식이다. 필요할 때는 민주적 전통으로 이어진 관례를 뒤엎고 거대여당의 숫자로 밀어붙인다. 야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모든 위원장을 여당이 갖겠다더니 결국 싹쓸이하고 말았다.

미국 예외주의가 종말을 고한 것이나, 한국의 예외적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은 데는 정치 엘리트들의 책임이 크다. 미국에선 각종 이익집단과 로펌, 비정부기구(NGO)들이 시민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민주주의를 위축시켰다는 비판이 많다. 한국에선 86세대 운동권 지도부들이 30년 만에 이 나라 핵심 권부에 한결같이 자리 잡은 게 잘못 끼운 첫 단추다. 그들이 민의와 대중의 뜻을 앞세운다며 이들 대중의 자발적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대중독재’의 어두운 그림자가 한국 민주주의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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