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는 19세기 유럽인 알렉시 드 토크빌의 눈에 비친 모습이다. 토크빌의 관념에서 신분제를 벗어던진 자유와 평등의 ‘민주정치 실험장’ 미국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주(州)라는 분권과 연방이라는 집권의 조화, 사법체계의 독립과 철저한 법치주의, 시민군 봉사와 납세의무를 선거권과 교환한 나라…. 출발부터 ‘예외적’이었던 미국은 세계 최초로 보통선거권(백인 남성)을 보장했고, 대통령 선거 투표율은 70~80%에 달했다.
양극단을 오가며 예외적 민주주의를 노정하는 나라에 한국도 있다. 1960년대 서구와 일본까지 휩쓴 좌파 및 반전(反戰) 운동의 물결이 1980년대 이후 잦아들었지만 한국에서는 군사정권에 맞선 민주화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김대중 정부를 거치며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모범국으로 칭송받을 때 ‘예외적 한국 민주주의’는 가장 밝게 빛났다.
정점은 국정 비선 운영에 대한 분노로 폭발한 촛불민심이다. 하지만 최초의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진 것이 어쩌면 미국처럼 ‘새로운 예외주의’의 전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느낌을 강하게 주는 발언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루자는 게 대표적이다. 법치주의의 주춧돌이 절차인데도 그걸 뛰어넘어 무슨 ‘깜깜이 민주주의’를 하자는 건지 헷갈린다. 정치적 해석이 다분할 수밖에 없는 ‘민의’를 잘 살펴 모든 국가기관과 사법체계마저 따라야 한다고 강변한다.
미국 예외주의가 종말을 고한 것이나, 한국의 예외적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은 데는 정치 엘리트들의 책임이 크다. 미국에선 각종 이익집단과 로펌, 비정부기구(NGO)들이 시민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민주주의를 위축시켰다는 비판이 많다. 한국에선 86세대 운동권 지도부들이 30년 만에 이 나라 핵심 권부에 한결같이 자리 잡은 게 잘못 끼운 첫 단추다. 그들이 민의와 대중의 뜻을 앞세운다며 이들 대중의 자발적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대중독재’의 어두운 그림자가 한국 민주주의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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