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자들이 이탈리아 마피아 등 범죄조직이 2015~2019년 발행한 채권 10억유로(약 1조3500억원)어치를 사들였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8일 보도했다.
이탈리아 은행 방카제네랄리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주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범죄조직 은드랑게타가 발행한 채권을 매입해 세계 각국의 연금펀드, 헤지펀드 등에 판매했다. 이 같은 내용은 회계법인 언스트앤드영(EY)의 컨설팅 내역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방카제네랄리는 채권 매입과 관련해 “(마피아와의 연관성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은드랑게타와 같은 범죄조직이 발행한 사채는 저금리 시대에 고수익을 좇는 헤지펀드와 패밀리펀드 등이 주로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FT는 “발행한 채권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이었지만 일부는 범죄조직의 자금 세탁 등을 목적으로 사용된 정황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은드랑게타는 시칠리아 마피아처럼 일반인에 잘 알려진 범죄조직은 아니지만 지난 20년간 급부상해 글로벌 범죄집단 가운데 가장 부유하고 악명 높은 조직이 됐다. 기업형 코카인 밀수부터 돈세탁, 강탈, 무기 밀수 등 다양한 범죄에 연루돼 있다.
유럽연합(EU) 경찰기구인 유로폴은 은드랑게타가 중앙집권화된 체제가 아니라 유럽과 미주 등지에서 수백 개의 독립된 계파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은드랑게타가 거둬들이는 범죄 수익은 연간 440억유로(약 59조28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리아 경찰은 지난해 자국을 비롯해 스위스, 독일, 불가리아 등지에서 활동 중인 은드랑게타 조직원에 대한 동시다발적 검거 작전을 펼쳐 260여 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역 기업인, 정·관계 인사 등과 유착해 각종 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았다.
체포된 이들 가운데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설립한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의 전 지역당 위원장 등 전·현직 정계 인사도 포함돼 있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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