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8일 다주택을 소유한 고위공직자들에게 “하루빨리 집을 처분하라”고 지시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이날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이달에 서울 소재 아파트도 처분하기로 했다”고 밝힌 직후였다. 전날 더불어민주당이 소속 의원 176명 전원에게 부동산 실태 전수조사를 시작하고 다주택 의원들에게 매각하도록 한 조치의 연장선상이다.
경제학계에선 강한 비판이 쏟아졌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공무원들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했고,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비민주적인 사회주의 정권에서나 나올 법한 조치”라고 했다. 공직사회 일각에선 “전 세계에서 웃을 일”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정 총리의 지시에 따라 중앙부처와 지자체 고위공직자의 다주택 현황을 파악하는 등 후속 조치에 들어갔다. 정부는 다주택을 보유한 공무원이 집을 처분하지 않으면 승진과 인사평가 등에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이제 시작 단계여서 여러 법률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고위공직자 다주택 문제가 심각한 만큼 승진과 임용에 반영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가피한 이유로 다주택자가 된 이들의 불만도 쏟아졌다. 2012년 정부세종청사 이전 이후 수도권과 세종시에 한 채씩 집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경기 의왕시에 있는 아파트 한 채와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을 보유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서초구 잠원동과 세종시 아파트 두 채를 보유했다가 이날 세종시 아파트 처분 가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한 고위공무원은 “자녀 학교 때문에 가족들이 서울에 살고 있어 집을 두 채 소유하게 됐는데 당장 처분하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3월 관보를 통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고위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 등 재산이 공개된 중앙부처 재직자 750명 중 33.1%인 248명이 다주택자였다. 이들 중 2주택자가 196명(26.1%)이었다. 3주택자는 36명(4.8%), 4채 이상 보유자는 16명(2.1%)이었다. 이 때문에 고위공직자에 한해 부동산 백지신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영민 실장은 이달 서울 반포의 아파트를 팔기로 했다. 지난 2일 반포 아파트 대신 충북 청주 집을 매각하겠다고 하자 “지역구를 버리고 ‘똘똘한 한 채’를 지키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져 반포 집도 내놓은 것이다. 노 실장의 아파트 매각으로 청와대의 다른 다주택 참모들을 향한 처분 압박도 커지고 있다.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참모 중 다주택자는 모두 12명이다.
주택 공급 확대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보다 다주택자에게 집값 불안의 책임을 씌우는 ‘편가르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위공무원과 청와대 참모에게 집을 팔라고 강제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며 “다주택자들을 집값 불안 책임 주범으로 몰아 문제 본질을 흐려 정책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인설/강영연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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