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세종시에 갖고 있던 아파트를 지난 8일 급하게 팔았다고 합니다. 서울에 사는 아파트 외에 2012년 공무원 특별분양으로 취득했던 아파트입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도 소유하고 있던 서울시 북아현동에 있는 주택건물(326.21㎡)의 일부 지분(81.55㎡)을 부랴부랴 처분했다고 하네요. 장인인 '가야금 명인' 고(故) 황병기 교수가 작고하면서 자녀 4명 중 한 명인 김 차관의 배우자가 공동 상속받은 것이었는데, 이를 다시 어머니(황 전 교수의 부인)에게 증여한 것입니다. 이로써 김 차관도 1가구1주택자가 됐습니다.
투기꾼 탓에 집값이 급등했다고 보는 정부인 만큼 공무원들이 '1가구 1주택'을 솔선수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택도 엄연히 사유재산인데, 고위 공무원이란 이유만으로 강제 처분을 해야 한다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무원들은 대부분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한 이후 서울과 세종시에 각각 집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서울과 지역구에 각각 기거할 곳을 마련하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또 김용범 차관처럼 부모로부터 공동 상속 받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등 제각각 사정에 따라 1가구1주택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특수성을 모두 무시하고 무조건 1가구1주택에 맞추라는 건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의 주택매각이 과연 집값 안정에 기여할지도 의문입니다. 주택 매각 대상인 2급 이상 공무원과 국회의원을 합쳐도 2000명이 안됩니다. 이들이 아무리 집을 내다 판다고 해도 가격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되지 못합니다. 정부는 부동산 대책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동산 대책의 신뢰가 상실된 건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집을 팔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 자체의 원인 진단과 처방이 잘못됐다고 시장이 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주택 공급을 줄인 요인을 살펴볼까요. 대표적 게 도심의 재개발·재건축 규제 강화입니다. 재개발·재건축이 주변 집값을 들썩이게 한다는 편견 때문에 허가 자체를 까다롭게 하고 층고와 용적률을 낮춰왔습니다. 이건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도심에 새 아파트 공급을 줄이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그나마 정부가 내놓은 주택공급도 상당수가 임대주택에 초점 맞춰졌습니다. 이는 그만큼 '매입 가능한' 주택 공급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집니다. 불로소득을 환수하겠다며 양도소득세를 크게 올린 것도 시장에 주택 매물 공급을 줄이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반면 적지 않은 정책이 주택 수요를 늘리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아파트 분양 때 추첨제를 줄이고 가점제 배정 물량을 늘린 것이 그렇습니다. 이 때문에 가점은 낮지만 소득이 많은 맞벌이 부부들은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주택시장의 매수자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서울 외곽에 3기 신도시를 계획한 것도 그렇습니다. 신도시를 개발하려면 조단위의 토지 보상비가 지급됩니다. 경험적으로 보면 이들 보상비는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들어옵니다. 여기에 코로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금융권이 시중에 푼 수백조원은 불붙은 주택수요에 기름 역할을 한 것이죠.
시장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정부가 정책을 펴면 시장은 대책을 세우고, 정부가 대책을 발표하면 시장은 방책을 세운다' 이런 시장의 생리와 힘을 무시해선 어떤 정책이나 대책도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시장과 싸우려고 들어선 안됩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습니다. 정부가 좀더 냉정하게 시장을 이해하고, 그 시장의 논리를 활용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지혜를 갖기 바랍니다.
차병석 수석논설위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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